[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얼마 전 A를 만났다. A는 서울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호흡기 내과 병동에서 일하던 A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올해 2월부터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하게 됐다. A를 처음 만난 건 지난 7월. 당시 방역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A를 알게 됐다.
A와 약속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확진자 폭증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수시로 바뀌는 근무환경과 비상체제에 A는 시도 때도 없이 환자들에게 달려가야 한다. 애초 약속하지 않는 게 A를 도와주는 일이었을까. '다음에 만나자'는 메시지를 서너 번 받은 끝에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5개월여 만에 만난 A는 커다란 백팩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퇴근길에 왜 모자를 쓰지? 병원에 갖고 다니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A가 모자를 벗는 순간 아뿔싸, 괜히 물어봤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A의 이마에는 자국이 있었다. 페이스쉴드가 남긴 자국이었다. 얼마나 꽉 끼고 있었는지 움푹 패인 자국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A는 자국이 없어지지 않아 퇴근길에 모자를 쓴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그가 코로나 병동에서 얼마나 힘든 사투를 벌였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강주희 사회문화부 기자 |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간호사들이 탈진해 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연일 폭증하면서 환자를 직접 돌봐야 하는 간호사들의 업무량은 임계치를 넘었다.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희생으로 코로나 사태를 버텨낸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간호사들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올해 국정감사에 따르면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의 간호사 절반 이상이 법정 근로시간 초과근무, 휴게시간 미보장, 연차휴가 강제지정 등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교대 근무하는 간호사 10명 중 8명은 이직을 고려할 정도고 입사 1년을 채우지 못한 간호사들도 줄줄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응은 보이지 않는다. 의료체계 개선과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절규가 팬데믹 속에 2년째 이어졌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현장 이탈이 늘어나자 정부는 올 9월 '코로나 병상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마련해 시범 적용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일선 현장에선 작동되지 않고 있다.
국회도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월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간호인권인력법'이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아직까지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 초기 당시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앞다퉈 동참하던 여야의 모습과 모순된다.
지금 간호사들에게 필요한 건 '덕분에'라는 격려가 아닌 실질적인 해결책이다. 늦었지만 방역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을 위한 처우개선과 지원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간호인력인권법도 처리해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축소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일 역시 필요하다. 간호사들이 무너진다면 그토록 희망하는 일상회복은 더디게 올 수밖에 없다.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는 긴급 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재 방역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확산세를 신속히 차단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폭넓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당장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현장을 읽지 못하는 대응, 말뿐인 '덕분에'는 책임감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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