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바로 '무(無) 소환조사 구속영장 청구'라는 전례 없는 무리수를 두면서다. 영장 청구 대상은 이른바 '윤석열 검찰 고발사주' 의혹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었다.
공수처가 야심차게 던진 승부수는 자충수가 돼 돌아왔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법원은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공수처의 청구가 증거인멸, 도망우려 등 구속 사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수사 진행 경과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지적도 담겼다.
장현석 사회문화부 기자 |
공수처는 또 다른 피의자로 입건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당내 경선 등 정치적 일정을 고려할 때 손 검사의 신병 확보가 시급했다는 입장이지만 충분한 조사도 없이 배짱만 앞세우다 수사 동력 상실 위기라는 망신을 자초한 꼴이 돼 버렸다.
하지만 단순히 망신에서만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수사기관이라고 하는 공수처가 무엇보다 앞서 보호해야 할 가치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차대한 사안인 탓이다.
헌법 제12조는 국민의 인신 구속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 누구든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야 한다고 말이다. 또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에 처하게 될 때 변호인의 조력을 받도록 돼 있고, 그 이유와 일시, 장소가 지체 없이 통지돼야 한다.
손 검사 측은 공수처와 소환 일정 조율 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호인 선임 문제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수처는 한 차례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피의자 조사 단계를 건너뛴 채 단 사흘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피의자 측에 통보했다.
공수처가 이번에 보여준 수사 행태는 왠지 낯설지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을 뒷전으로 한 공권력 남용은 공수처 탄생 이전에도 늘 있어 왔다.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수사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피의자 조사 없이 기소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최근에도 검찰은 대장동 의혹 사건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를 상대로도 충분한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돼 부실수사 비판을 받았다. 주요 수사 단서였던 '정영학 녹취록' 내용을 김 씨 측에 들려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해 놓고 첫 소환조사 바로 다음 날 영장을 기습 청구한 뒤 벌어진 일이다.
공수처는 국민의 성원 속에서 무소불위 검찰 조직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한 최상위 권력기관이다. 그런 공수처에게 검찰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김진욱 공수처장은 취임 당시 이렇게 말했다. "공수처의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께 받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권한을 맡겨주신 국민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적법 절차 원칙을 준수하며 인권 친화적인 수사를 하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결코 오만한 권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의 '초심'이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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