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이 불평...증권사 맞나" 하소연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MZ세대라는 게 인터넷에만 등장하는 건줄 알았는데 요즘 증권사 신입들 보면 확실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칼퇴(정시퇴근)는 기본에 다른 사람보다 업무가 많다고 느끼면 거리낌 없이 불평도 늘어놔요. 저 신입사원 시절과 비교해보면 여기가 증권사가 맞나 싶어요."
얼마 전 만난 한 팀장급 증권맨의 하소연이다. 증권사의 전형적인 보수적 문화에 익숙한 이 팀장이 본 MZ세대는 이렇다. 출근시간은 지키되 옛날처럼 30분 더 일찍 사무실에 오는 경우는 없다. 업무량이 많다고 느끼면 곧장 사수나 팀장에게 '일이 너무 많으니 다른 사람들과 분담해달라'고 요구한다. 눈칫밥에 야근을 하기 보다는 눈총을 받더라도 정시에 퇴근한다. 친해지기 위해 상사가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면 곧장 얼굴에 불편한 티를 낸다.
임성봉 금융증권부 기자 |
수년 전만 하더라도 증권사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당돌한 MZ세대가 속속 입성하면서 증권사들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부당함, 불공정에 민감한 MZ세대와 '까라면 까'라는 기성 세대 상사와의 갈등이 현장 곳곳에서 불거진다. 기업 문화가 보수적이기로는 손에 꼽는 증권사에서는 오죽 심할까.
MZ세대도 '꼰대'로 만들어 버리느냐, 꼰대가 MZ세대에 맞출 것이냐. 다행히 그 기로에서 증권사들이 점차 후자를 선택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앞으로 MZ세대의 사회 진출이 늘어날수록 '변화하라'는 내외부의 압박도 거셀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테다. 거부할 수 없는 변화라면 일찍 받아들이고 체질을 개선하자는 게 증권사들의 고심 끝 결론이다.
대표적으로 KB증권은 대표이사가 MZ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뛴다. 매년 상·하반기에 젊은 직원들과 최고경영자(CEO) 타운홀 미팅도 1회씩 진행하고 있다. MZ세대 직원들의 아이디어 게시판인 'Idea Board'를 설치하는가 하면 젊은 직원들이 멘토가 되고 임원들이 멘티가 되는 역멘토링 프로그램 '리버스 멘토링' 등도 운영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복장 자율화에 나섰고 삼성증권은 일부 부서를 제외하고 복장을 편안하게 입도록 허용했다. '칼정장'의 상징이던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초 온라인 관련 부서에는 복장 자율화를 허용했다. 창의적인 생각이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복장 등에서는 한결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MZ세대와 소통하겠다는 것이 오히려 MZ세대의 불만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불편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부장급 이상에서도 회사의 이 같은 방침을 따르기 싫다는 반응도 많다. 'MZ세대가 벼슬이냐'는 것이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맞춰야지, 상사가 부하직원 눈치를 봐서야 되겠느냐"는 그들의 불만 역시 틀리지 않았다.
과도기 단계를 거치다 보니 시행착오도 적지 않고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증권업계가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다. 회사 내부의 MZ세대 직원들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하면서 MZ세대 투자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질적 성장을 위해서든, 외적 성장을 위해서든 증권사의 기업 문화는 혁신돼야 하는 게 맞다. MZ세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다고 운을 뗐던 아까의 팀장급 증권맨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MZ세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분위기나 문화가 바뀌다 보니, 다른 고참급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덩달아 높아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MZ세대들이 비정상적인 기업문화를 정상으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