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기밀문서 해제..."12·12 되돌리려다 처참한 상황 올 수 있어"
[서울=뉴스핌] 신호영 인턴기자 = 미국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자 했던 정보을 입수했지만 더 큰 참상을 우려해 반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외교부는 미국 카터 대통령 기록관으로부터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국 측 비밀해제 문서 사본 882페이지를 전달받아 공개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한 '역쿠데타' 모의는 과거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등에서 알려진 바 있지만 미국 정부 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전두환 씨가 9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호흡곤란' 호소해 25분만에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1.08.09 kh10890@newspim.com |
미국 측으로 전달받은 문서 전문에는 1980년 2월 1일 한국군 내 반(反) 전두환 움직임에 대한 사실이 국무부에 보고된 내용이 포함됐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군 내부에서 위험한 주도권 다툼이 감지된다며 "우리는 한국 군 내부의 어떠한 추가적인 분열은 한국에 있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양측에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준범 장군'(General Rhee Bomb June)으로부터 12·12 사태를 되돌리려는 '반(反)전두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미군은 "한국 군 내 분열은 1979년 전두환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보다 더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미군은 제보자인 '이범준'에게 "12·12 사태 주모자들의 권력 확장과 민간정부 장악에 반대한다. 동시에 12·12 사태를 되돌려리는 군 내부의 움직임도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는 점을 강하게 전해야 한다"고 썼다.
다만 확인 결과 당시 장군 중 '이준범'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범준이란 자의 신원과 관련해 "이범준이 우리에게 전환 이야기에는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그가 누구인지)정확하게 알 수 없다. 5·18 진상규명위원회도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앞서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범준 당시 국방부 방산차관보로 추정되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 美, '역쿠데타' 정보 입수 후 실체 파악에 주력...정확한 의도 몰라 반대
당시 미국대사관은 '역쿠데타' 움직임 제보에 즉각 움직이지 않고 제보 배경 파악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역쿠데타 모의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모의 주체를 '선배 장교그룹'으로만 묘사했다. 그는 "자신이 그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제보의 내용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이범준의 제보 의도가 역쿠데타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을 사전에 파악하려 했거나 역쿠데타 모의의 위험을 미국 측에 경고하려고 의도했을 수도 있다"며 "전두환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측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미국 카터 대통령 기록관으로부터 받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된 문서 캡처. [사진=외교부 제공] |
결국 대사관은 제보자의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잘못 대응할 경우 역쿠데타 음모에 말려 들어갈 수 있음을 우려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역쿠데타 음모에 말려 들어갈 수 있다"며 "미국 정부는 한 군 집단이 12월 12일 일어난 일들을 되돌리려 하거나 다른 세력이 정부를 다시 장악하려고 할 경우 한국에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했다.
다만 회고록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의 요청에 대해 미국 측은 바로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워싱턴에서는 단안을 주저했다"며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주도에 의한 전두환 제거를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5.18 당시 누가 광주시민에 발포를 명령했는지 등 군사작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은 없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외교부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의 비밀해제를 위해 미국과 긴밀히 소통해왔다. 미 측 관련 부처가 한국 외교부의 비밀해제 신청을 검토해도 된다고 회신하면 미 국립기록관리청이 최종적으로 해제 절차를 밟는다.
이번에 미 측이 비밀해제 후 한국 측에 전달한 문서는 이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 후 기록관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shinhor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