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병폐 시정, 국가개조 대전환 돌입
경제 사회 산업정책 필요시 모두 수술대에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건 당연한 이치야. 작은 것은 큰 것에 잡혀먹게 마련이지'. 주성치 감독 영화 장강7호에서 초등학생인 부잣집 아들이 같은 반 학생인 가난뱅이 건설노동자(농민공)의 아들을 타박하며 하는 얘기다.
건설 노동자 농민공(주성치 분)은 아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온몸을 바쳐 비싼 사립학교에 보낸다. 홍콩이든 대륙이든 맹모의 후손인 중국인들에게 왕즈청롱(望子成龍, 자녀가 출세하기를 고대함)은 인생 최대의 갈망이다. 초등학생 철부지 아이들의 생각은 기성 사회의 반영이다. 주성치는 천진한 아이들을 통해 무한 경쟁으로 신음하는 홍콩과 '중국 시장경제(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을 고발한다.
중국은 2020년 인터넷 플랫폼 기업 알리바바의 금융기업 마이그룹(앤트파인낸셜) 상장에 제동을 건 것을 비롯해 시장이 놀랄만한 조치들을 연거퍼 발표하고 있다. 단순한 개혁이 아니다. 평소 같으면 하나하나가 모두 혁명 같은 조치들이다. 이런 정책들은 중국당국이 2020년 가을 19기 5중전회에서 '자본의 문어발식 팽창을 근절하겠다'고 표방한 이래 하루가 멀다하고 튀어나왔다.
2021년 7월 중국 사회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정책이 또 터져나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무교육 9년) 학생들의 숙제부담 경감과 학원및 일반 과외교육을 금지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중국 인터넷 교육 테마주들이 등록된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는 '장송곡'이 들려왔다. 주가가 한번에 60%~95% 대폭락하면서 증권이 하루 아침에 휴짓조각이 되다 시피했다.
'정부 의중을 거스르는 괘씸죄에 걸린거다. 인터넷 기업 길들이기의 일환이다. 인터넷 자본의 정보장악과 공룡화에 중국 공산당이 위협을 느낀 결과다. 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이다'. 중국 정책이 나올때 마다 이러쿵 저러쿵 해석들도 분분하다. 이런 평들은 주로 서방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분석들로 상당부분 서구언론과 서방 국가및 자본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2020년 가을 이후 도대체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 진출 외자기업과 투자자들이 한번쯤 들여다봐야할 문제다. 새 정책이 나올때 마다 중국은 나름대로 배경을 설명한다. 정보의 불충한 면도 많지만 이런 설명들을 모자이크처럼 맞춰가다 보면 중국 당국이 밝히지 않은 부분까지 드러나면서 그럴싸한 그림이 그려진다.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조치가 왜 나오는지에 대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7월 24일 나온 '숙제 경감과 학원수업및 과외금지 조치'는 신동방을 비롯한 신경제 인터넷 기업에 대해 거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대타격을 줬다. 겉만 보면 이 조치는 일부 주장처럼 O2O 공유경제 인터넷 산업 정책의 대전환이나 비대화한 인터넷 기업 자본 길들이기 차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엔 영구집권을 꾀하는 중국 공산당의 훨씬 더 계산된 심모원계(深謀遠計)의 전략이 감줘져 있다.
중국 당국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5월 31일 세자녀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은 2035년 선진국 문턱 진입, 2050년(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수퍼강국 실현을 국가목표로 세워놓고 있다. 이를위해선 5% 안팎의 지속성장을 해야하고 이를 뒤바침하는 동력은 바로 젊은 노동력이다. 2016년 두자녀 허용 카드를 써봤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세자녀 정책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견하고 있다.
7.24 '과외 금지' 조치는 세자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양육비와 교육비, 주거비 부담이다. 이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한자녀 정책을 폐지한 이후 중국 젊은 부부들은 '낳아도 키우기 힘든데 누가 애를 낳겠는가(生的起也養不起)'라며 볼멘소리를 해왔다.
웬만하면 공산당을 무조건 칭송하고 추종하던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만큼은 약간 냉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세태를 방치했다간 단순한 인구문제를 넘어 체제 기반까지 도전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가뜩이나 시진핑 지도부로선 2022년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어느때 보다 광범위하고 공고한 대중적 지지가 절실한 실정이다.
베이징의 한 한국 학자는 "미국의 대중 공세는 내부 체재 결속을 강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중국의 현 19기 공산당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요인 외에 국내적으로 대중의 광범위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중국 공산당은 초 개혁적인 교육 정책과 계획경제를 방불케하는 부동산 정책, 인터넷 기업에 대한 정리정돈 카드를 빼들고 나선 것"이라고 이 학자는 덧붙였다.
영향력 최대의 인터넷 포털 뉴스 텐센트는 7월의 '과외 금지' 교육 정책과 관련, 교육 공평성 실현은 민생 관련 중대 문제라며 인민이 반대하는 것은 역사무대에서 퇴출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인민과 대중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좌클릭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하는 논평이다.
새 정책은 학부모 교육비 부담을 대폭적으로 낮추는 것 외에 교육과 기회의 공평성을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를 낳고 싶은(敢生孩子)'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80년 한국 군사정권이 과외를 금지한 것과 유사한 조치를 취했고 한발 더 나가 사립학교를 사실상 전폐 직전으로 몰아가는 정책을 내놨다.
한동안 사립 교육 붐으로 우수교원과 교육자원이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넘어갔다. 의무교육(초등 6년과 중학교 3년 학비 무료)은 허울 뿐 학부형들은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자녀를 1년 학비가 2만 위안~10만 위안하는 사립학교에 진학시켜야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공립학교 등 각 기관 주도로 전국에 우후죽순 처럼 세워진 사립학교가 인민의 고혈을 짜고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원흉이라고 본다.
2021년 여름 중국에서 일고 있는 혁명적 성격의 교육 제도 개혁은 바로 이런 사회적 병폐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일정 정도 신분 사다리를 복원하는 부대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로서는 무너져내리는 공교육을 살리는데다 학비 부담 경감으로 인민 대중에게 칭송을 받게됐으니 일석이조가 아닐수 없다.
당국은 공립학교에 대해 2년 안에 단독 또는 합작 설립한 사립학교를 전부 정리하도록 했다. 앞으로 더이상 공립이 사립학교를 합작 설립하는 것을 인가하지 않기로 했다. 쓰촨성에선 9월 한 외국어 사립학교가 신학기 부터 공립 전환 명령을 받았다. 결국에는 완전한 독자 사립학교만 남게되는데 이런 사립학교는 설립 운영과 재정 교사및 학생모집 등의 면에서 자체 운영이 힘들어 점차 고사 상태에 직면할 것으로 보여진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주성치의 영화 '장강 7호' 초등학생 꼬마 아이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양극화와 양육강식, 무한경쟁의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중국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창당 100주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 시진핑 리더십 공고화와 20차 당대회를 앞둔 중국 공산당은 지금 이 말이 잘못됐다고 정면 부인하고 있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 함께 부자가 돼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것(大同), 중국 공산당은 이것이 시진핑 신시대 중국 사회주의의 지향점이라며 경제 사회 산업 정책에 거리낌 없이 좌경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