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일본, 가깝고도 먼 애증의 역사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별 여행안내 사이트(www.gov.uk)의 한국 지도에서 'Sea of japan'(일본해) 단독 표기가 삭제됐다. 또한 세계 여행 사이트(worldtravels.com)는 일본해를 내리고 동해(East Sea)로 표기했다. 이같은 변화는 지난달 12일 영국에서 열린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우리나라가 초청된 이후 벌어진 일들이어서 주목된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2021.07.13 sollane@newspim.com [사진=월드트래블스 사이트] |
영국 정부의 국가별 여행안내 사이트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가 삭제된 것은 영국 정부의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고,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VANK)의 계속된 노력 덕택이기는 하다. 반크는 지난해 3월 이 사이트의 한국과 북한 지도에서 '일본해'가 단독으로 표기되고, 독도가 누락된 것을 발견하고 영국 정부와 주한 영국대사관에 시정 서한과 함께 동해 표기의 정당성 자료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소개하는 자료, 독도가 표기된 한국 지도 등을 전달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1년 4개월여 만에 일본해 표기를 삭제했다. 현재 이 사이트의 한국과 북한 지도에는 바다 이름이 없는 상태다. 반크는 삭제된 일본해 자리에 '동해'를 표기해 달라고 다시 영국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이 사이트에 아직 동해 표기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일본해 표기가 삭제됐다는 사실만 해도 일본 정부와 일본인은 이를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일 듯하다. 지난 G7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이 받은 비상한 대접에 견주어졌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푸대접(?)의 악몽이 다시 재현된 것이다.
당시 G7 정상회의의 첫 번째 확대회의 세션에서 영국 보리스 존슨 수상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자신의 오른쪽 자리에,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을 왼쪽에 앉혔다. 국제회의에서 주최국 오른쪽 자리에는 항용 최우선 VIP가 앉는다는 점에서, 이날의 풍경은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리기에 충분했다. 다음날 콘월의 카비스베이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에서도 문대통령은 맨 앞 줄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존슨 영국 총리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자리는 연이틀 구석이었다.
세계수로기구(IHO)는 표준지도인 '해양의 명칭 및 경계'를 작성하고 국제수로 이용에 관한 표준규칙 등을 관장하는 기구다. IHO는 한일간 동해와 일본해 표기의 대립을 중재하면서 세계 각국이 바다 이름을 표기할 때 기준으로 삼는 표준 해도집에 동해나 일본해와 같은 명칭 대신 번호로 표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2020년 11월 총회에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 동해가 국제표준에 '일본해'로 오르면서 이어진 명칭 논란이 일단락된 상태다. 아울러 일본이 주장해왔던 일본해가 표준이라는 주장도 그 근거가 사라지게 됐다. 기존 해도지침 '해양의 명칭 및 경계(S-23)'는 일제 강점기이던 1928년 발간한 초판부터 현행 3판에 이르기까지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왔고, 이는 일본 측이 동해를 일본해로 주장한 근거가 됐다.
IHO가 새롭게 제작할 S-130은 모든 해역에 지명 표기 없이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하는 디지털 방식의 신 해도지침이다. 이 방침에는 일본 측도 찬성했다. IHO가 이런 새 방침을 정한 것도 사실 일본에는 큰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1997년부터 '동해' 병기를 주장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동안 꾸준히 일본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지난 2011년만해도 영국 정부는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서를 IHO 실무자 회의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10년만에 이런 영국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사실 영국은 대한민국보다 일본과 훨씬 가까운 나라다. 지난 역사가 그랬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조슈 번(지금의 야마구치 현)과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 현)의 핵심 인물들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해 모두 영국 유학파다. 이들 유학파가 메이지유신의 성공 이후 정권의 실세를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당시에는 해외로 나가는 밀항이 사형에 처해지는 중대범죄였는데, 나가사키의 영국 무기판매상인 토마스 글로버(Thomas Glover)가 이들을 모두 홍콩으로 실어날라, 홍콩에서 영국으로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들이 영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 세력도 글로버의 배후인 자딘 매터슨(Jardine Matheson)이다. 자딘 매터슨은 영국이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발발하도록 막후 조종한 바로 그 회사다.
이렇게 영국은 1868년 메이지유신의 성공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영국이 아니었으면 메이지유신은 실패한 쿠데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시스템은 상당 부분 영국식으로 개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좌측통행이고,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귀족제도, 내각 발족식이나 정식회의 때 입는 영국식 프록코트(frock coat)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에서 들여온 카레도 일본의 국민음식이 되었다. 이처럼 일본에는 영국풍을 모방한 풍물이 많다. '영국뽕'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화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의 성공 자체가 영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이지 정부는 이런 영국을 바로 배신한다. 1871년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중앙집권국가 수립에 성공한 유신정권은 그 직후인 11월 대대적인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했다. 우대신 이와쿠라 토모미(岩倉具視)를 전권대사로 하고 참의(參議)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대장경(大藏卿)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공부대보(工部大輔) 이토 히로부미 등을 전권부사로 하는 정부 주요직만 총 48명으로 당시 정부 관료의 절반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수행단까지 합치면 10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구미 국가와 조약 개정의 예비교섭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양 선진문명을 현지에서 시찰하고 새로운 일본 건설에 참고하는 것이었다.
대대적인 순방 이후 메이지 정권의 목표가 정해졌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형태의 영·미·프랑스가 아닌, 황제의 권한이 강대하고, 문무 관료가 지배하는 독일(프러시아)과 러시아 체제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일본과 직접 이해 대립이 없고 공업화도 진전돼 있으며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지닌 독일이 일본의 모범이 되었다. 일본의 독일 따라하기는 이 때 결정된 것이다.
그러자 일본을 인도처럼 지배하려했던 영국의 계획에도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 영국은 자기 나라는 표준궤로 바꾸면서 뜯어낸 협궤열차를 일본에 팔아먹는 등 이익실현을 막 도모하려 했는데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일본 지방에는 아직도 영국식 협궤열차가 운행중이다.
신정부의 실력자들은 모두 젊었다. 모두 30-40대였고, 이토 히로부미는 겨우 30세였다. 혈기왕성한 그들에게 프러시아의 활발한 대외 팽창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후 일본은 독일을 따라서 군비확장을 통한 외국 침략의 길로 본격 나서게 된다.
이들 메이지 핵심세력은 1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을 이용했다. 일본은 영국 요청으로 1914년 8월 23일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에 개입했다. 영국은 아시아에서 독일 무장 상선을 수색하는 것에 한정해서 일본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영국의 제한적 참전요구를 뛰어넘어 전면 참전을 선언했다. 그러자 영국이 참전 의뢰를 취소했는데, 일본은 이를 무시했다. '동양에 대한 일본의 권리 확립', 즉 식민침탈에 너무나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상원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마친 후 상원 도서관을 방문,안헬 곤잘레스 도서관장으로부터 상원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국전도'에 대한 설명듣고 있다.[사진=청와대] 2021.06.16 photo@newspim.com |
IHO가 동해와 같은 명칭 대신 번호로 표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도, 갈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이트의 표기를 두고 한일간 국지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국지전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결국 국가 경쟁력, 국력이다.
G7 정상회의 직후 문대통령이 스페인을 국빈방문했을 때 스페인 정부가 독도와 대마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된 고지도(조선왕국전도)를 공개해서 보여준 것은 바로 이같은 국제질서 냉엄한 현실의 적나라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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