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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간첩혐의 '피고인'이 간첩조작 '피해자'로 불리기까지

기사입력 : 2021년07월06일 11:13

최종수정 : 2021년07월06일 11:13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아버지는 민주주의 수호와 민족통일이 염원이셨고 공산주의를 찬양한 분이 전혀 아닙니다. 부디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고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죄를 선고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남편은 절대 간첩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형을 선고받고 17년 동안 긴 옥중생활을 강요당한 뒤 세상을 떠난 남편의 원통한 마음을 어디에 호소하면 됩니까."

이성화 사회문화부 기자

법원에서 재판 취재를 하다보면 피해자의 말 한마디에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수십년 전 수사기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고 거짓 자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 사건이다.

1960~1980년대 당시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 정작 재심 법정에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그 자녀들이 부모와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을 청구하고 재판부에 무죄를 호소한다.

과거 정권이 자행한 간첩조작 사건은 수없이 존재하고 아직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피해자는 많이 남아있다. 그 중 6일 서울고법에서는 박정희 정권 시절 자행된 대규모 간첩조작 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7년간 복역한 고(故) 박기래 씨에 대한 재심 선고기일이 열린다.

또 13일에는 전두환 정권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를 간첩으로 조작한 '일본 거점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을 확정받았다가 17년 옥살이 끝에 가석방된 고 손유형 씨와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손 씨의 친척 3명에 대한 재심 결과가 나온다.

법원은 20일 통혁당 간첩사건으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고 박경호 씨에 대한 재심 선고기일도 진행한다.

이 사건들 모두 선고 결과를 직접 들을 당사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도 재심을 청구한 지 짧게는 1년 6개월, 길게는 3년이 지나서야 법원으로부터 재심 재판을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법원은 재심 청구가 접수되면 관련 기록을 건네받고 검찰과 변호인 측 의견서를 제출받아 재심개시 사유가 있는지 검토한 뒤 재심개시 결정을 내리는데 이 과정만으로 몇 년이 걸리는 것이다. 손 씨 일가 사건의 경우도 재심 재판부가 제주, 부산 등지에서 직접 재판을 보러 온 손 씨 가족들에게 재심개시 결정 자체가 늦어진 점에 대해 거듭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심개시 결정 이후 재판부의 "피고인은 무죄"라는 한 마디로 간첩 혐의 피고인은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을 듣기까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오랜 세월 간첩이라는 오명 속에 살아야 했고 힘들게 재심을 청구한 뒤에도 법원이 재심개시 여부를 판단할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재심개시 결정이 지체되는 이유는 오래 전에 벌어진 사건이라 관련 기록이 충분하지 않거나 아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검찰의 협조 속에 최대한 신속한 재심개시 결정과 심리가 필요하다.

shl2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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