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옛 한양의 중심부인 서울 인사동서 금속활자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 점과 물시계의 주전,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총통류 8점, 동종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발굴됐다.
오경택 (재)수도문물연구원 원장은 29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번 유물들은 창고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됐다. 금 간 도기 안에 금속활자와 물시계의 주전이 같이 발견됐고 동종과 총통은 도기 내부에서 출토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금속유물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2021.06.29 dlsgur9757@newspim.com |
먼저 금속활자의 경우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과 더불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가 대거 발굴됐다.
이날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은 "6월 초에 활자를 처음 보고 여러 자료를 찾고 검토한 결과 꽤 많은 종류의 활자가 확인됐다. 한두 점의 활자가 아니라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금속활자가 출토된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글자체는 면밀히 확인하는 과정에 있으며 15세기부터 16세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체 한글표기, 크기, 형태 등으로 봤을 때 최소 5종 정도가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 시기에 활자는 1420년 경자자, 1516년 병자자 계열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갑인자(1434년) 계열의 큰 자는 10여 점 정도가 확인됐다. 규장각에 유사한 활자가 100여점 정도 있지만 학계에서는 미확인 금속활자로 판명하고 연구가 중단됐었는데 이번에 출토된 유물 가운데 미확인 금속활자와 똑같은 것들이 출토됐다. 갑인자 계열의 큰 자는 기술적으로 정점에 올라있는 활자라고 알려졌다. 활자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시대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금속활자 출토에서 눈여겨 볼 점은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금속유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2021.06.29 dlsgur9757@newspim.com |
이에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의 활자가 발견됐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금속활자에는 두 개 글자를 붙인 것이 나오고 크기가 큰 자부터 가장 작은 자까지 4가지 종류의 크기가 발견됐다. 표기상으로 반치음(ㅿ)으로 부르는 글자가 훈몽자회(1527년)에도 나온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활자 발견에서 또 다른 특징 중에 하나가 두 개 활자를 붙인 연주활자가 있다는 것"이라며 "'~이나' '~하고' '~하며' 등이 있다. 이는 한문을 공부할 때 한글 토씨를 넣는데 토씨 사이에 규칙적으로 이러한 말이 많이 쓰이니까 한 덩어리로 만들어 조판에서 노력을 절약하려고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가치를 설명했다.
금속활자와 함께 출토된 주전의 경우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 이는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조선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돼 의미가 크다.
총통 역시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톰 7점으로 총 8점이며 조사 결과 최상부에서 확인됐고 완형의 총통을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종의 경우 도기호 옆에 파편으로 나뉘어 매납된 상태로 출토됐다. 동종의 형태는 조선 전기인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평 현등사 봉선사 종(보물 제1793호)'와 양식이 유사해 해당 야식의 선행유형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 서울 공평동 유적 출토 금속유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등이 공개되고 있다. 2021.06.29 dlsgur9757@newspim.com |
오경택 원장은 "동종의 경우 파편으로 나뉘어 매납 됐지만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출토된 유물들이 의도적으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 동종의 상태나 금속활자가 발견된 도기의 상태로 봤을 때 토압에 의해 눌린 것은 아니다. 또 총통은 일정 크기로 잘려져 있다"며 "묻으신 분이 의도적으로 묻었는데 긴박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오 원장은 "이번 유물들의 성분 분석은 하지 못했지만 순동에 가깝다. 동 자체가 조선시대에 귀한 자료이다. 저희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유물이다. 이쪽 지역은 양반도 살았겠지만 아석분들이 주로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일반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의 터인데, 그 집의 창고로 추정되는 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출토 유물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이번 유물은 유적의보존가치가 높아 학술자문회, 전문가검토회의,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공평도시유적전시관'과 같은 유적전시관을 계획할 예정이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