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해자 분리 등 매뉴얼 있지만…제대로 작동 않는 경우 다반사
방혜린 "군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 재점검 계기 삼아야"
[서울=뉴스핌] 하수영 기자 = 공군에서 여군 부사관이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사실 신고 후에도 군에서 이렇다 할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자 지난달 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지난 3월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여군이었던 A 중사는 회식 이후 차 안에서 상관인 B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회식 참석 자체도 B 중사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데, A 중사는 차 안에서 성추행까지 당해야 했다.
대한민국 공군 공식 마크 [사진=공군본부 홈페이지] |
A 중사는 곧바로 피해 사실을 군에 신고했지만, 수차례 A 중사에 대한 회유 압박과 은폐 시도가 이뤄지면서 2차 가해를 당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군은 '부대를 옮겨 달라'는 A 중사의 요청도 곧바로 들어주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부대를 옮긴 뒤에도 A 중사는 첫날부터 홀로 야근을 하는 등 부당한 대우로 고통 받았다.
A 중사가 마음고생을 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것.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성폭력 사건 발생 자체보다 사건 발생 후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범죄율이 0%가 될 수는 없다. 사건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발생 시 대응 매뉴얼 [사진=국방부] |
국방부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 발생시 ▲상담‧신고 ▲통합지원 ▲조사 및 수사(징계‧형사처분) ▲사후관리 순서로 절차가 진행된다.
특히 통합지원 단계에서는 ▲가해자와 즉시 분리 ▲개인 신상 보호 ▲휴가‧휴직 등 기타사항 조치 등이 이뤄지도록 했고, 이후 군사경찰 및 군검찰이 수사를 개시해 징계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매뉴얼화 돼 있다.
사후관리 단계에서도 ▲본인 희망 시 보직조정 ▲개인신상 및 피해사실 보호 ▲부대 내 따돌림 등 2차 피해 예방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공군 부사관 성폭력 피해 사건만 보더라도 이 절차 중 상당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방혜린 팀장은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사건 발생 및 신고 후) 부대 내의 문제들이고 따라서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부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한 군대 내 성폭력 피해 사건의 경우에도 부대 내에서 피해자에 대해 '불륜을 했다'는 식으로 잘못된 소문이 돌아서 피해자가 힘들어 했었다"고 언급했다.
방 팀장은 군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제도를 보다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해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피해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매뉴얼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