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농심 회장, 27일 숙환으로 별세...그가 남긴 어록 살펴보니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쓴 'K-푸드 신화'..."한국인 라면은 우리 손으로"
신라면·새우깡 등 제품 작명 일화도 유명...브랜드 전문가 인정받아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27일 숙환으로 별세한 신춘호 농심 회장은 자신을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칭했다. 라면과 스낵을 만드는 일도 장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신춘호 회장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신 회장은 평소에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1965년 회사를 설립한 신춘호 회장은 신라면과 새우깡, 짜파게티 등 공전의 히트상품을 남기며 'K-푸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생전에 남긴 어록은 확고한 그의 경영 철학을 보여준다.
[서울=뉴스핌] 이서영 기자 = 신춘호 농심그룹 1세대 회장. 2021.02.05 jellyfish@newspim.com |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신춘호 회장, 라면사업 뛰어들다
신춘호 회장은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형제사이다.
신 회장은 1958년 신격호 회장을 도와 롯데 부사장을 맡아 일했고 1963년 독자사업을 모색했다.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춘호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후 신 회장은 독자 라면 브랜드인 '롯데라면' 출시했고 이어 1971년 새우깡을 히트시켰다. 신춘호 회장은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연구 개발에 더욱 매진했다. 회사 설립 때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둔 이유이기도 하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신춘호 회장은 제품 연구 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새우깡 개발 땐 4.5t(톤)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가 사용됐다.
특히 그는 당시 라면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신념 아래 새로운 라면브랜드 만들기에 몰두했다.
◆롯데공업→사명 변경 '시련'..."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다만 이 과정에서 시련도 있었다. 라면 사업을 반대했던 신격호 회장과 사이가 악화되면서 1978년 사명에서 롯데를 빼고 '농부의 마음'이란 의미를 담아 농심으로 교체했다.
그 이후 신 회장은 라면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후 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 1986년 장수 브랜드인 신라면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K-라면의 초석을 다졌다. 현재까지도 신라면은 100여개국에 수출하는 농심의 대표적인 '효자 상품'으로 분류된다.
신춘호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신라면이나 새우깡 등 히트 상품의 브랜드 명칭을 직접 작명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고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 |
고인이 브랜드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1970년 '짜장면'의 실패에서였다.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국내 최초 짜장라면 '짜장면'은 출시 초기 소위 대박을 쳤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으로 급조된 미투제품의 낮은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짜장라면 전체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농심의 짜장면도 사라지게 됐다. 당시 신춘호 회장은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춘호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 실제 유기 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을 만들었다.
신라면 탄생도 마찬가지다. 신춘호 회장은 신라면 명칭 사용을 위해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임원진을 끝까지 설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신춘호 회장은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했다. 옥수수깡은 2020년 10월 출시됐고 품절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었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 만인 1971년부터다. 지금은 세계 100여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봉에서 남미의 최남단까지다.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불의 해외 매출을 기록했다.
신춘호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며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며 수출 확대를 추진해 왔다.
농심은 2011년 프리미엄라면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다. 신라면 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딛고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