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 않은 위협 행위…협박죄로 처벌될까
대법 "해악 고지만으로도 협박의 고의 인정"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알루미늄 파이프를 질질 끌며 위협한 행위가 실제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았더라도 해악을 고지한 것만으로도 특수협박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특수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 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원심판결 중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에 환송했다"고 24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재판부는 "협박죄가 성립되려면 고지된 해악의 내용이 행위자와 상대방의 성향, 당시 주변 상황, 전후 사정 등을 종합해 볼 때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며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상대방이 그 의미를 인식한 이상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구성요건은 충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파이프는 사람의 생명·신체에 해를 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 점, 피고인의 행위를 보고 피해자가 차량을 후진하거나 뒷걸음질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같은 행위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은 "피해자들이 차량 안에 있어 피고인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해도 알루미늄 파이프를 들고 다가오는 행위를 인지한 것만으로도 일반적으로 피해자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며 "실제로 위해를 가할 의사가 없었다고 해도 해악을 고지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고 보여 협박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또 "알루미늄 파이프를 들고 나와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피해자들이 그 의미를 인식한 이상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협박죄가 성립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4월 21일 밤 11시경 경남 거창군 소재 할인마트 앞에서 피해자 B 씨가 운전하는 차량이 자신의 차량 앞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로 알루미늄 파이프를 손에 들고 바닥에 끌고 다가가며 "이 새끼들 장난치나!"라고 말하는 등 협박한 혐의를 받았다.
다만 A 씨는 파이프를 들어 올리거나 휘두르는 등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B 씨 역시 법정에서 "무섭지는 않았고 당황스러운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1심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 씨의 혐의 중 특수협박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보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피고인의 행위는 단순한 감정적인 욕설 또는 일시적인 분노의 표시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도 법정에서 크게 무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진술해 협박 행위 내지 협박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원심판단에 특수협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파기·환송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