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 강화 포함해 공공기관 직원 땅 투기 재발방지책 추진
공무원 일부 "내가 투기꾼이냐" 반발...실효성 없는 규제라는 지적도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정부와 여당이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부동산 재산동록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차명 거래로 이뤄지는 비리 행위가 많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내부 개발정보를 이용해 실명으로 부동산 매입에 나선 공공기관 직원들은 빙산의 일각이란 평가가 많다. 투기자의 경우 언제든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실명거래로 위험부담을 굳지 감수할 필요가 없어서다. 그 때문에 차명 거래와 정보 유출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실명거래 규제로는 한계...차명거래 차단이 비리방지 핵심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부동산 업무 관련 공직자는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실명 거래에 대한 규제라는 점에서 한계로 평가된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원내대표)과 정세균 국무총리, 김상조 정책실장 등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 등을 위한 고위 당정청협의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 총리, 김 직무대행, 김 정책실장, 박범계 법무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최재성 정무수석. 2021.03.19 leehs@newspim.com |
전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부동산 업무 관련 공직자는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향후 공공기관 종사자, 지자체 공무원, 공기업 포함해 모든 공직자의 부동산 재산등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농지취득심사를 강화하고 불법 행위가 발견되면 처벌 수위도 높이겠다"고 말했다.
또 사전에 투기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공공기관 직원들이 부동산을 매입하려면 미리 기관에 알리는 사전신고제도 적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산등록 및 사전신고제 등은 실명 거래에서만 적용되는 규제다. 대상자는 직원 본인과 배우자, 자녀 정도다. 실제 차명과 법인, 지인을 통한 불법 거래는 걸러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강력한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보는 직원들이 내부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매입할 때 대부분 차명 거래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 감사를 피하고 완전 범죄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차명 거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실명으로 땅 투기한 직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차명 거래에 대해 국무총리실 산하 합동조사단 및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혐의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18일 경기 하남시의회 김은영 시의원은 부동산 차명거래 의혹을 받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모친이 매입한 임야가 3기 교산신도시 부지로 편입돼 상당한 차액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배우자도 해당 임야에 매입가보다 많은 근저당을 설정하고 불법 형질변경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 차명 투기의혹을 받아 왔다. 경기도 용인시 반도체 생산단지 사업 부지 일대에도 LH 직원의 차명 거래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차명 거래와 지인을 통해 부동산 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혁신안이 강도 높게 모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신도시 땅 전체 소유자와 직원 간 의심 거래를 찾아야 한다. 제3자를 이용한 자금 흐름도 추적해야 한다. 법인을 통한 투기는 없었는지도 밝혀내야할 부분이다. 실명 거래자보다 수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땅 투기 대부분은 차명 거래로 이뤄지는데 정부의 조사 방식이나 조치가 이를 규제할 마땅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현재의 조사 방식에서는 투기 의혹자의 혐의 입증이 어렵고 실효성도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공공기관 직원들도 술렁..."우리가 투기꾼이냐"
이런 정부의 규제 방안에 공공기관 직원들도 술렁이고 있다. 잠재적 투기꾼으로 분류하는 게 과도한 대응책이란 반응도 있다.
부동산 개발 정보에 접근성이 없고 활용 여지가 낮은 공직자까지 재산공개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고 '보여주기식' 규제라는 것이다. 국토부 산하 한 공기업 직원은 "부동산 개발하고는 전혀 무관한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재산등록을 하라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LH 직원들의 투기의혹이 확산되자 공기업 지원들을 모두 잠재적인 투기꾼으로 분류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재 공직자 재산등록은 4급 이상 공무원과 감사·국세·관세 등 특정 업무를 맡은 7급 이상 공무원, 공기업의 장, 공직 유관단체 임원 등 22만여 명이 대상이다. 여기에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을 포함한 공무원 정원과 공기업 및 공공기관 임직원을 합하면 15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투기 근절을 위해 추진되는 규제안이라고 해도 모든 공직자에 재산등록을 강요하는 것은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투기비리의 핵심은 차명 및 법인, 지인을 통한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춰 규제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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