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전 LH 임직원 100억원대 땅 매입 의혹
민변과 참여연대, 감사 요청에 국토부·LH "철저히 조사"
광명·시흥 원주민, 투기판 조장에 불신.."지정 철회" 요청도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에 앞서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이 땅 매입이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거세다.
신도시 및 택지지구의 설계부터 주택공급까지 실무적으로 총괄해 내부 직원들이 사전 정보를 기반으로 투기에 나섰을 공산이 크다. 이런 내부 정보를 이용해 직원들이 땅 매입에 나섰다면 불법 행위다.
위법성 여부는 조사 결과가 봐야겠지만 일단 100억원 규모의 투기 자금이 유입됐다는 점에서 국토부와 LH가 신뢰도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광명·시흥지구 원주민 사이에선 관리 감독에 철저해야 할 LH 직원들이 불법 투기에 참여한 만큼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신도시 발표전 100억대 땅장사 한 LH 직원들...원주민 "지정 철회하라"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광명·시흥지구가 신도시로 지정되기 전 LH 임직원이 대거 이 일대 땅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정이 철회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일대 모습.<사진=박우진기자> |
일단 원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광명·시흥 일대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투기판으로 만들어 놨다는 불만이다. 토지를 강제로 수용당하는 주민들은 박탈감이 크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상황인데 투기 조장을 막아야 하는 LH 직원들은 되레 사익에 도구로 이용했다는 시각 때문이다.
20년째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 모씨(59세)는 "원주민 대부분이 바라지 않는 지역 개발을 밀어붙이면서 정작 그 직원들은 땅 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분노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며 "투기 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원주민의 진정한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광명시 옥길동 인근 T공인중개소 대표는 "2018년 3기 신도시 지정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부터 외지인 투자가 많았고, 그 중에 LH를 비롯한 공공기관 직원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확한 내용은 조사를 통해 나오겠지만 LH 직원들이 땅 투기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주민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일대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은 일부 사실로 드러난 상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 일부 토지의 거래 내역을 살펴본 결과 LH 직원이 14명이 100억원대 땅을 매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입 자금의 절반 정도는 대출을 이용했다.
이번 조사는 제보로 이뤄졌으며 실제 광명·시흥 일대 땅을 매입한 사례가 더 있을 것이란 게 참여연대 측 설명이다. 실명으로 거래된 계약 이외에 배우자, 친인척, 지인 등을 통해 이뤄진 매입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공공기업 직원의 투기는 불법이다. '공공주택특별법'상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든 분위기다. 직원들의 땅 매입이 이뤄질 당시 LH 사장이 변 장관이다. 직원들의 불법 투기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국토부와 LH 직원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할 경우 광명·시흥 땅 투기 의혹의 몇 배에 달하는 불법행위가 드러날 수 있다.
국토부의 양희관 공공택지기획과 과장은 "민변과 참여연대가 제기한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며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수사를 의뢰하거나 고소·고발 등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LH도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LH 관계자는 "의혹이 제기된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며 "사내 비밀정보를 이용한 거래인지를 집중적으로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토부·LH, 정책적 신뢰도 타격 불가피..."투기방지 위한 시스템 만들어야"
이번 사태가 불거지면서 LH뿐 아니라 국토부의 신뢰도에도 타격을 받게 됐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방침에 공기업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일탈 행위로 정책적 순수성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주민들과의 마찰도 커질 공산이 크다. 지구지정과 토지수용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온라인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선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 "신도시 조성이 LH 직원들 배불리기 위한 정책이냐", "불법행위를 철저히 감사하고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야 한다"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LH 직원들이 땅 투기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8년 3기 신도시 지정을 앞두고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던 고양 원흥지구의 개발 도면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동산 업자들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이 일대 토지 거래량이 급증하고 땅값이 폭등했다. 원흥지구는 막판 신도시 지정에서 제외됐는데, 이 사건 조사 결과 개발 도면을 유출은 LH 직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직원들도 일부 투기에 동참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신도시 지정 전 공기업 직원의 투기 의혹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민변․참여연대는 광명·시흥지구 이외에도 남양주 왕숙, 하남교산 등 3기 신도시 일대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기성 자금이 상당해 직원들의 단순 일탈로 볼 수 없고 국민 혈세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위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는 "일부 필지 거래를 조사했음에도 적지 않은 LH 직원들이 투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시스템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실명으로 거래한 수치만 공개했는데 차명거래, 배우자, 친인척 거래 등으로 확대하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선 직원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