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권발급건수 전년 대비 1/3 수준…"여권 필요성 못 느껴"
전문가들 "백신접종 상황, 확진자 발생 양상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 정모(32) 씨는 지난해 6월 유효기간 10년짜리 여권이 만료됐지만 아직까지 여권을 다시 발급받을 생각이 없다. 정씨는 "2019년 말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만 해도 다녀와서 얼른 다시 발급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보니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여권이 만료됐다"며 "사진도 다시 찍어야하고, 언제 해외여행이 가능할 지 전혀 알 수 없어서 한동안은 여권을 다시 만들 일도, 쓸 일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면서 유효기간이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거나 발급받는 발걸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종도=뉴스핌] 윤창빈 기자 =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 안내로봇이 돌아다니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영국에서 입국한 확진자에게서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확인된 데에 따른 조치로 지난 7일까지 영국에서 들어오는 항공편에 대한 운항중단은 일주일 연장됐다. 2020.12.29 pangbin@newspim.com |
8일 외교부 여권정보통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여권 발급 건수는 84만7200건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지난 한 해 여권 발급 건수는 113만건 수준으로 추산된다. 2019년 454만3000건에 비해 1/3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여권 발급이 급격하게 줄어든 데에는 코로나19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해져지면서 "내년쯤엔 해외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더 이상 갖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17일부터 1개월간 내국인의 전 국가·지역 해외여행에 대한 제4차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3월 11일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한 데다 상당수 국가가 전 세계 대상 입국금지·제한 및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방학기간을 이용해 1년에 두 번씩 해외여행을 수년 간 다녔다는 교사 이모(32) 씨는 지난해 여권이 만료됐지만 재발급받지 않았고, 앞으로 재발급 받을 계획도 없다. 이씨는 "여름방학 땐 유럽, 겨울방학 땐 동남아시아 등 항상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여권이 만료된 지도 몰랐다"며 "내년쯤에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더라도 당장 갈 생각이 없어서 당분간 여권을 재발급 받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김모(35) 씨는 "2020년 초만 해도 전문가들이 코로나19가 잡히려면 3~4년은 걸릴 것이란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3차 대유행까지 겪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걸 보니 조만간 해외여행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 자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해외여행 가능 시점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여행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 소비자동향연구소가 지난해 9월 1만305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행과 코로나19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37.9%) 꼴로 해외여행 재개 시점을 2년 이후로 전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1년 혹은 그 이상 해외여행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경향도 발견된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3명(33%)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줄었다고 답했다.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측도 엇갈린다. 확진자 발생 양상, 국내를 비롯한 해외각국의 백신접종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로선 해외여행 가능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우리나라만 안정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백신접종률과 다른 국가의 상황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석 고려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여행 가능 시점에 대한 예측이 어렵지만, 계절적인 영향과 백신접종 상황 등을 고려하면 올 여름이 되면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려면 지금처럼 확진자가 발생하는 양상은 확실히 줄어들어야 하며, 그걸 공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 역시 전제돼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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