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국가 관리·감독받는 금융기관…사회적 책무 요구"
2013년까지 신입직원 여성 비율 평균 27%에 불과…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인정
"인사책임자들 개인적 이득 없어…채용비리 개인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은행 고위 간부와 연관 있는 지원자나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에게 특혜를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나은행 인사담당자들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합격권에 들지 않은 특정 지원자들에게 다음 전형 기회를 부여하는 등 특혜를 준 행위에 대해 채용 공정성을 저해한다며 혐의를 인정했지만, 최종합격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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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 [사진=하나금융그룹] 2020.03.22 bjgchina@newspim.com |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박수현 판사는 9일 하나은행 전 인사부장 강모(57) 씨 등 4명의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강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강씨의 후임자 B(57) 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하나은행 전 인사팀장 C(49) 씨와 D(49) 씨에 대해서는 각각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고,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나은행에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들은 채용업무를 담당하면서 추천받은 지원자이거나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라는 이유로 특정 지원자에게 다음 전형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특정 그룹에 대한 합격 비율을 사전에 정해둬 합리적 이유 없이 일부 지원자들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채용절차를 진행했다"며 "공정한 성과를 기대하고 채용절차에 임한 일반 지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회 전반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인사담당자들의 죄책을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인사담당자들이 이 사건 범행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자녀, 친인척 등을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시킨 것이 아닌 점, 이들의 행위로 업무를 방해받은 면접관들과 하나은행이 이들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 특정 지원자 리스트 만들어 추가 기회 부여는 혐의 인정…최종합격자 선발 과정은 '무죄'
재판부는 추천자 리스트를 만들어 개인적인 전화, 메일, 문자메시지 등 비공식적 방법을 통해 추천자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엑셀파일로 만들어 따로 관리한 점, 이 리스트를 바탕으로 다음 전형 합격자를 발표하기 전 추천자 리스트에 포함된 지원자들에 대해 검토하는 절차를 거친 점은 채용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인사담당자들은 특정 지원자들이 추천된 사정 외에 업무 적합성을 개별적으로 고려해서 합격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지원자가 추천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검토하는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사담당자들의 주장과 같이 설령 추천자 리스트에 기재돼있는 사람의 지위가 해당 지원자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원자들과 다르게 검토 기회가 한 번 더 부여되는 행위 자체로 공정성 절차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임원면접을 거친 뒤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과정과 관련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은행 인사담당자들은 2013년 하반기, 2015년, 2016년 신입직원 채용과정 중 최종 합격자 선정 단계에서 임원면접관이 부여한 점수를 임의로 조정하거나 변경하는 등 이 면접관들이 부여한 결과와 다르게 최종합격자를 선발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검찰은 인사담당자들이 임원면접에 참여한 임원들에게 자신들이 평가한 점수가 향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오인한 채 평가절차에 임하도록 해 위계를 행사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사담당자들이 임원면접 결과와 다른 점수를 기재해 최종합격자 선발했다고 해서 지원자들의 임원면접 시험에 대한 능력에 변경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면서 "따라서 인사담당자들의 행위는 임원 면접시험 응시자격 능력과 관련해 오인이나 착각을 일으키게 한 점이 아니다"라고 무죄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 성별 그룹 나눠 그룹 내에서 합격 예상인원 배분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재판부는 남녀 지원자 비율이 사실상 55 대 45로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지원자들의 지역별·성별을 구분해 경쟁그룹을 만든 뒤 그룹 내에서 합격 예상인원을 배분,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성차별을 둔 강씨와 B씨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신입직원 기준 지원자 성비는 남녀 55 대 45로 큰 차이가 없지만, 성별을 구분해 경쟁그룹을 만들고 그룹 내에서 합격 예상인원을 배분해 남녀비율 합격자는 2013년 상반기 남녀 9 대 1, 2013년 하반기 8 대 2, 2014년 7 대 3등의 비율로 큰 차이가 있다"며 "여성지원자가 커트라인이 남성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나 여자가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사담당자들은 영업점에 남성 행원 배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2013년까지 하나은행의 신입직원 여성 비율이 평균 27%에 불과해 여성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남성을 채용할만한 합리적인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으로 사회적 책무를 가진다면서도, 강씨 등 인사담당자들의 범죄행위를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하나은행은 기본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기업 운영상 필요에 의해 채용 방식이나 규모 등을 결정할 자유를 가진다"면서도 "하지만 은행은 일반적인 사기업과 달리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고, 은행이 부실화될 경우 자금이 투입되는 등 국가의 감독과 보호를 받는 금융기관으로 하나은행은 상당히 높은 공공성을 갖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가진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인사담당자들은 상당한 기간 하나은행에 성실 근무했으며, 잘못된 관행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며 "따라서 이 사건 범행을 개인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함께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강씨 등은 2015~2016년 인사부장을 역임하면서 하나은행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은행 고위 간부와 연관 있는 지원자와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에게 특혜를 주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강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과 벌금 300만원을, B씨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하나은행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cle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