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주이탈리아 北 대사대리직 수행 1년 후 잠적
2019년 7월 韓 입국 뒤늦게 알려져…자유조선 개입설도
"남북관계 영향 미미…北, 김정은 체면 구기지는 않을 듯"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지난 2018년 잠적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조성길(45)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국내에 입국한 것으로 한 방송사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2012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첫 '거물급' 망명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남북관계도 살얼음판을 걸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은 '무결점'이라 주장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민낯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핵심 엘리트층'의 탈북은 북한 최고지도자 입장에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사급이 한국으로 망명한 것은 1997년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20년 만이다.
지난 2018년 잠적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조성길(45)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국내에 입국한 것으로 한 방송사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사진=JTBC 보도 캡처] |
◆ 충성도 검증 거친 '엘리트층' 조성길…외교관 집안 출신
조 전 대사대리의 세부 프로필은 사실상 '깜깜이'다. 다만 1975년생인 그는 평양외국어대를 졸업 후, 90년대 말 외무성 근무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5년 5월 이탈리아에 3등 서기관으로 이탈리아 현지에 부임, 2년 뒤 대사대리 역할을 맡았다. 3등 서기관이 대사대리로 승진한 배경에는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이탈리아가 당시 문정남 대사를 추방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외 공관의 주업무는 '김정은 통치자금' 마련이다. 이는 조 전 대사가 유럽 지역 등에서 사치품 밀수를 담당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조 전 대사대리는 일명 '금수저' 출신이다. 폐쇄적인 북한이 해외에 주재하는 대사를 파견할 때는, 사상과 충성심 등에 대한 검증을 거친 엘리트층에게만 기회를 준다.
태영호 국민의힘(전 주영국 북한 공사·2016년 귀순) 의원도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조 전 대사의 아버지와 장인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특히 태 의원은 "성길아, 걱정하지 마라. 신변 안전이 없다면 우리가 이탈리아 대사관과 현지에 촉구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결심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카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조선'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훼손하는 영상을 공개했다.[사진=자유조선 홈페이지 게재 영상 캡처] |
◆ 갑작스러운 잠적에 각종 설(說) 난무하기도…반북단체 '자유조선' 개입 관측도
아울러 조 전 대사대리는 지난 2018년 11월 종적을 감춘 뒤 각종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구체적으로 '이탈리아의 보호를 받으며 망명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미국 또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제3국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북한으로 송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등이었다.
일련의 상황에서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 과정에는 반북단체인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월 "조 전 대사대리는 사건 당일 아침 부인과 함께 산책하러 간다며 밖으로 나갔다"며 "이들은 근처에 있는 차에 탄 뒤 돌아오지 않았다"며 차량을 운전한 당사자는 자유조선 조직원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자유조선은 2017년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VX 신경작용제 공격으로 독살된 뒤, 그의 아들 김한솔을 제3국으로 피신시킨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서관 낙서사건 등 반북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사진=뉴스핌 DB] |
◆ 北 고위층 망명에 남북관계 '불똥' 튀나…전문가 "北, 확대시키지 않을 것"
한편 조 전 대사대리 망명에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단 전문가들은 문제를 확대시켜봐야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떨어트린다는 점을 북한이 모르고 있을리 없다며 확대 시킬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선전매체 등을 통해) 시비를 걸기는 하겠지만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확대시켜봐야 김 위원장 체면만 구긴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센터장은 "(망명 공론화가) 남북관계에 당분간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칠 수는 있겠지만 북측이 '납치했다', '돌려달라'는 식의 주장은 펼치지 않을 것"이라며 "태 전 공사 건도 있고 현재 탈북자는 3만명이 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외교관은 충성도가 뛰어난 최고엘리트층"이라며 "그런 인물이 한국에 왔다는 것은 북한이 어렵다는 걸 반증해주는 것이다. 외교관 특권이 있는 인물도 희망이 없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