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청와대는 12일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재난지원금 액수를 2배로 상향 조정하되 4차 추경 편성은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던 "이미 편성된 예비비를 사용하거나, 내년 예산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논리로 4차 추경을 요구한 정치권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앙정부는 예산 3조원 외에 추가적인 예비비를 확보하고 있고, 지방정부도 재난관리기금과 구호기금 등 2조4000억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수재민들에 대한 긴급 생활비 지원 등은 이 정도 자금으로도 충분하다. 무너진 제방이나 다리를 복구하는 데는 1년 이상 걸리므로, 본격적인 복구비는 내년 예산에서 확보하면 된다는 정부의 설명은 타당하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서 돈부터 확보하자는 정치권의 4차 추경 요구를 잠재웠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들어 추경은 너무 남발됐다. 집권 첫해인 지난 2017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11조2000억원의 추경을 시작으로 2018년 청년일자리 추경 3조8000억원, 2019년 미세먼지 및 경기대응 용도로 5조8000억원의 추경을 각각 편성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다며 세 차례에 걸쳐 총 59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문제는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발행한 적자국채 규모가 예상보다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전국민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 때는 3조4000억원, 35조원 규모로 편성한 3차 추경에는 23조원 가량의 적자국채를 각각 발행했다. 이로써 올해 예정된 적자국채 규모는 97조6000억원으로, 당초 계획한 37조원을 2.6배나 초과했다. 혹시라도 청와대와 민주당의 요구로 4차 추경까지 편성하게 되면 또 다시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너무 빠르게 늘어난다는 점이 걱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12일 현재 국가채무는 798조원이다. 국민 1인당 기준으로는 154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9년 723만원과 비교하면 불과 10년 남짓 만에 두배 이상 늘었다. 국가채무는 지난 2000년 100조원에 불과했으나, 2004년 200조원대, 2008년 300조원대, 2011년 400조원대, 2014년 500조원대, 2016년 600조원대, 2019년 700조원대를 차례로 넘어섰다. 3차 추경 기준 올해 국가채무는 839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는 935조3000억원으로 늘고, 2022년이면 1030조5000억원으로 10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우리나라의 부채상환능력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3.5%로 역대 최고치에 도달하게 된다. 2022년에는 48.9%, 2023년이면 51.7%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정부는 OECD국들에 비해 아직 양호하다고 하지만, 구조적인 경기 침체 양상에다 코로나10의 글로벌 팬데믹 영향으로 세수가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실제로 올 상반기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차감한 통합재정수지는 90조원 적자다. 여기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하고 정부의 실질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0조5000억원에 달했다.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모두 불과 1년 만에 51조원 이상 증가했다. 경기부진으로 세수가 줄어든 반면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등 지출이 늘어난 탓이다.
재정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감사원이 지난 6월 권고한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가 부채나 재정적자 한도를 법률로 정하면, 코로나19 재난지원금처럼 정치권의 과도한 선심성 지출 요구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제안한 '하향식 예산심의제도' 도입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국가채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정치권의 무책임하고 과도한 추경 요구를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재정 준칙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