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닫은 靑 "외교부가 자체적으로 상황 알아보고 있어"
외교부 "확인해 줄 내용 없어…뉴질랜드와 소통 중"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한국 외교관 A씨에 대한 뉴질랜드 정부의 입장 표명이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한국 정부의 비협조적인 부분을 언급하며 "실망스럽다"라고까지 했다.
'성비위 사건 무관용'을 원칙으로 강력한 처벌을 예고해 왔던 외교부의 '소극적 대응'이 국제적인 망신살을 뻗치게 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뉴질랜드 인터넷 매체 '스터프'의 지난 30일 관련 보도 일부.[사진=스터프 홈페이지 캡처] |
◆ 뉴질랜드 총리 대변인 "총리, 韓 정부에 실망 표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질랜드 인터넷 매체 '스터프'에 따르면 아던 총리의 대변인은 최근 서면 입장문에서 "총리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특권면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점에 실망을 표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어 "이 문제는 이제 한국 정부가 다음 조치를 결정하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8일 아던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외교관 성추행 문제에 대한 언급을 듣고 "사실관계를 파악 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정상 간 통화에서 개인적인 사안이 언급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뉴질랜드 언론도 이를 두고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한·뉴질랜드 간 외교적 이슈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며, 관심을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도 주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외교부 청사.[사진=뉴스핌 DB] |
◆ 외교부 "확인해 줄 내용 없어…뉴질랜드와 소통 중"
외교부는 외교관 성추행 의혹이 정상 간 통화에서 언급되는 등 외교 쟁점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수습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간 외교부는 뉴질랜드 사법 당국에 대한 수사 협조는 "본인 의사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했고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라는 뉴질랜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치 않고자 한다"며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그간 외교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배경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을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외교관을 주재국 경찰이 직접 조사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점과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외교관들이 현지 사법 당국의 수사 협조에 반드시 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일보에 따르면 최근 외교부는 뉴질랜드 경찰 측이 궁금한 점을 보내오면 대사관 직원들의 답변을 받아 주겠다고 역제안 했으나 뉴질랜드 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현재 뉴질랜드 경찰은 외교관 A씨와 같은 시기에 근무했던 동료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하게 해달라는 것과 성추행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의 CCTV 영상도 함께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서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련의 보도에 대해) 현재 확인해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어쨌든 정부는 뉴질랜드 측과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 외교관 A씨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사진=뉴스허브 방송화면 캡처] |
◆ 외교관 A씨 "신체 접촉은 장난" vs 피해 직원 "3차례 추행 당해"
외교관 A씨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4월 뉴질랜드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다.
이후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가 지난 25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논란이 가중됐다. 특히 뉴질랜드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관련 사실을 언급한 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뉴스허브에 따르면 외교관 A씨는 지난 2017년 대사관 근무 당시 뉴질랜드 국적의 대사관 직원 B씨의 엉덩이를 움켜쥐거나 가슴 부위 등을 손으로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세가지며, 뉴질랜드 재판에 넘겨질 경우 각각의 혐의마다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씨는 대사관에 제출한 내부 문서를 통해 "성추행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한두번 정도 배 부위를 두드린 적은 있지만 농담을 하는 상황에서 그랬을 뿐이다", "두 손으로 가슴을 툭툭쳤던 것은 기억한다(움켜진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번 논란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외교적 망신'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도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1일 기자들과 만나 '외교부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지적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외교부 자체적으로 상황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아꼈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