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에 석달 간의 재실사 요구
시장, 채권단 '입' 주목…"현산 인수의지 저의 확인할 것"
정부·산은, 대응책 마련 분주…국유화·분리매각 플랜B
[서울=뉴스핌] 김진호 기자 = '인수 의지냐, 아니면 포기 수순이냐'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HDC현대산업개발이 제시한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카드' 수용 여부를 놓고 숙고(熟考)에 들어갔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는 재협상 혹은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채권단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전략인 셈이다. 때문에 채권단은 현산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몰리게 됐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들이 멈춰 서있다. 2020.04.22 mironj19@newspim.com |
채권단 관계자는 27일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청과 관련해 "인수합병(M&A) 절차에서 수용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계약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수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현산은 전날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 달 중순부터 12주 동안 아시아나항공을 재실사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보냈다고 밝혔다. 현산은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들어 금호산업이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을 위한 선행조건 충족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산의 갑작스러운 재실사 요구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모두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채권단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인 채권단이 그간 인수합병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점에서다. 항공업 빅딜의 성사 여부를 쥔 '공'이 채권단에 넘어온 것이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그간 수차례 재협상에 나서라는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현산이 돌연 재실사 카드를 꺼낸 점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산 측이 인수 의지와 관련한 진정성이 있는지 저의를 확인해야만 재실사 여부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용 여부는 아직 결정돼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산의 요구대로 재실사를 받아들일 경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채권단 모두 3개월간 '희망고문' 속에서 버텨야만 한다. 재실사 이후 인수를 마무리 짓는다면 다행이지만 '문제점'을 꼬집으며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시간 낭비'가 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실사 후 끝내 발을 뺄 경우 채권단과 금호산업 등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우려가 크다"며 "시장에서는 재실사 요구가 2500억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 소송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실상 현산에 계약 파기를 위한 '명분'을 줄 수 있는 점도 채권단 입장에선 고민이다. 재실사를 거부할 경우 현산은 계약해지의 귀책사유를 '금호산업과 채권단'으로 돌릴 것이 자명하다.
코로나19로 항공업 타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 현산 외에 인수합병에 관심을 가진 인수자를 찾기는 어렵다는 점도 채권단에겐 부담이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산은은 최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플랜B'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랜B는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지 않고 채권단 관리 아래 두는 이른바 '국유화 방안'과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 등을 쪼개 파는 '분리매각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편 현산과 채권단·금호산업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 역시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매각 무산 가능성이 고조될 경우 '3자 회동(은 위원장-이동걸 산은 회장-정몽규 현산 회장)'을 개최하겠다는 뜻을 언론에 밝힌 바 있다.
rpl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