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큰 파급력 없어" vs "자본·인재 유출"
홍콩 익스포져 2%…딤섬본드 수요 적어
헥시트 부담…국내은행 해외IB 여건 나빠
[서울=뉴스핌] 김진호·백진규 기자 = 미국이 30일 '글로벌 금융허브'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하며 은행권에 미칠 파장이 주목받고 있다.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낮은 규제로 홍콩을 해외투자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삼아온만큼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금융권에선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갈등이 원인인 만큼 당장 금융시장에 큰 파급력을 가져올 가능성이 낮다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루지만 향후 제재가 본격화되면 자금조달 금리 상승 등으로 자본과 인재가 빠져나가는 '헥시트(Hexit·해외 투자 자금의 홍콩 대이탈)'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다 본 홍콩 시내 전경. [사진=블룸버그] |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에 진출한 국내 은행은 정책은행과 시중은행을 포함해 7곳이다.
홍콩은 낮은 법인세와 규제, 고급인력 밀집 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금융친화적인 환경으로 평가돼왔다. 미국이 지난 1992년 제정한 '특별지위'를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사와 기업들을 유치한 결과다. 국내 은행들 역시 홍콩에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수십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현재 국내 주요 은행들은 홍콩에 해외 거점을 두고 글로벌 IB 업무를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홍콩에만 50여명에 가까운 IB 인력을 뒀다. 하나은행은 홍콩 법인인 KEB하나글로벌재무유한공사를 통해 글로벌 IB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 역시 홍콩에 법인을 운영 중이다.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소식에 은행권은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모습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홍콩은 중국의 대중국 수출 관문이고 국내 금융사들의 네트워크도 탄탄해 쉽게 버릴 수 없는 곳"이라며 "이번 특별지위 박탈 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 약 50여명의 직원을 두고 IB 업무를 영위하는 산업은행 관계자도 "홍콩 금융당국의 조치가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는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에 대해 국내 은행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차분한 것은 학습효과 영향이 크다. 지난 몇년 간 진행된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며 국내 은행들은 자금조달 창구를 다양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리스크를 지속해서 줄여왔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홍콩 익스포져는 60억달러로 전체 대외 익스포져의 2%에 불과하다. 지난 2018년 18억1000만달러였던 한국의 딤섬본드 발행 역시 지난해 1억5000만달러로 급감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철수도 많이 하고 있어 딤섬본드에 대한 수요는 날로 줄어드는 추세"라며 "홍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경우 기관들 역시 홍콩 대신 유럽 등에서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이 현실화돼 자본이동과 비자발급 등에 장벽이 생기며 이른바 헥시트'(Hexit·Hong Kong+Exit:홍콩에서 자본이 빠져나가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자리한다.
특히 미국 IB와 주요 해외기업들의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은행들 역시 이를 따라 홍콩을 떠날 개연성이 높다. 홍콩이 '글로벌 금융허브' 역할을 상실하면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금융주선이나 투자 자문 등 영업 활동에도 제약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주요 IB의 경우 이미 싱가포르, 시드니, 도쿄 등에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 이동이 자유롭지만 국내 금융사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영향도 크다. 해외진출을 위해선 금융당국의 인허가와 네트워크를 갖춰야 하는데 홍콩을 떠나게 될 경우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홍콩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 금융기관 엑소더스가 시작될 우려가 충분하다"며 "일본과 싱가포르 등이 유력한 대체지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당국도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철회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시장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홍콩을 둘러싼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국내 주식, 채권시장 등에 대한 영향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rpl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