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의원, 체불임금 책임 면해…제주항공 '당황'
"규제산업인 항공업 특성상 제주항공 인수 포기 어려울 것"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이 이스타항공 지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은 오히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 의원이 이스타항공 지분을 포기하면 체불임금을 책임질 주체가 사라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제주항공은 이 의원 일가가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이스타항공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 체불임금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분 포기 선언 이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체불임금 해결이 M&A의 선결조건이라고 여러차례 언급해온 제주항공은 계획대로 딜을 진행하기 어렵게 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만큼 M&A 무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인수를 끌고 온 제주항공이 쉽게 딜을 무산시키기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 이스타, 제주항공에 빌린 단기차입금 100억 못값아…CB·38.6% 지분이 담보
우선 이스타항공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측 주장대로라면 이 의원의 이스타항공 주식 포기로 인해 이 의원 일가는 체불임금을 지불할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열린 M&A 중요사항 발표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편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스타홀딩스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가족들의 이스타항공 지분 모두를 회사 측에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2020.06.29 alwaysame@newspim.com |
이 의원 일가가 이스타항공 지분 38.6%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이에 상응하는 매각대금을 제주항공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는 핵심이었다. 계약 내용을 뜯어보면 이 의원 일가는 매각대금을 거의 챙길 수 없다. 체불임금 책임까지 포함하면 50억원 안팎의 부담을 더 지게 되는데, 주식 포기로 인해 오히려 이 책임을 피하게 된 셈이다.
결국 이스타항공의 사실상 오너인 이 의원 일가가 체불임금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주항공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할 주체가 사라지게 됐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통해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8.6%를 이스타항공에 헌납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지분은 410억원에 해당되는 규모다. 이스타항공 지분 38.6%를 보유한 이스타홀딩스는 이 의원의 딸 이수지(31) 대표와 아들 이원준(21)씨가 각각 33.3%, 66.7%를 보유한 사실상 가족회사다.
이 의원 일가가 이스타항공 지분의 매각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데에는 작년 12월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으로 빌린 단기차입금 100억원이 불씨로 작용했다. 당시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와 이스타항공 M&A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동시에 이스타항공에 100억원을 단기로 빌려줬다. 당시만 해도 인수 주체인 제주항공이 인수 과정 중에 이스타항공의 부족한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차원이었다.
◆ 체불임금 책임 포함시 이 의원 손해…"제주항공, 딜 깨기 쉽지 않을 것"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수가 지연되면서 발생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단기차입금 100억원을 빌려주면서 이스타홀딩스 소유의 이스타항공 지분 38.6%와 100억원 규모의 이스타항공 전환사채(CB)를 담보로 잡았다. 인수가 차질 없이 진행되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제주항공은 해외기업결합심사를 이유로 당초 4월 29일이었던 인수 시한을 양사가 합의하는 날로 정한다고 변경했다. 사실상 무기한 연기다. 반면 단기차입금의 만기는 지난 26일로 이미 지났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스타항공이 국제선에 이어 국내선 운항 중단에 들어간 24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주기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멈춰 서있다. 2020.03.24 mironj19@newspim.com |
통상 차입금을 값지 못하면 담보물권 처분 절차를 거치게 돼 있다. 하지만 M&A 주체인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지분을 공매로 처분하기는 힘들다. 이에 차입금 100억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100억원의 1.5~1.8배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담보인 이스타홀딩스 소유의 100억원 규모 이스타항공 CB를 제주항공이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M&A 매각대금에서 제외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앞서 체불임금 250억원 중 110억원을 매각대금에서 깎는 방식으로 분담하겠다고 한 이스타항공 제안을 포함하면 이스타홀딩스는 85억원의 매각대금을 챙길 수 있는 셈. 이 의원이 주식 헌납을 통해 포기한다고 한 금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이 체불임금 전부를 책임져야 한다고 가정하면 이 의원 일가는 50억원 안팎의 부담을 더 져야 한다. 주식 포기 선언으로 이 의원 일가는 이 책임을 피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이스타항공 측은 "제주항공이 단기차입금 100억원에 배수를 주식에서 제외하는 등의 방법을 제안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 입장에서는 이 의원의 주식 포기로 인해 이스타항공의 체불임금을 해결할 방법이 사라지게 됐다는 점에서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체불임금 해결이 M&A의 선결 조건이라고 여러차례 언급해온 만큼 제주항공이 짜놓은 경로대로 딜을 진행하기 어렵게 되서다.
이 의원이 갑작스럽게 주식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M&A가 결렬될 거란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M&A를 오래 끌어 온 제주항공이 딜을 깨기는 쉽지 않을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M&A를 염두에 두고 정부 지원을 받았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정부 눈치를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업은 상시 정부 인가가 필요한 사업인데, 이스타항공 인수를 전제로 제주항공이 정부자금 지원을 받은 상황에서 딜이 깨질 경우 패널티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정도의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서 제주항공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unsa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