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통해 순환출자 정리하라더니…곳곳에 지뢰 심어
모회사 지분 0.01%만 보유하면 자회사 이사 상대로 소송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 경영진 무장해제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재계가 여당 국회의원의 상법 개정안 발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거대 여당의 출범과 함께 기업 옥죄기가 더 강력하게 이루어질 것이란 걱정이 크다.
이번에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정부안보다도 더 강한 수준으로 대주주의 권한을 축소시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국내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단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7일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 도입 △집중투표제 전면도입 △이사해임요건 마련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도입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지만, 총수 일가 '힘빼기'에 주력하다보니 글로벌 헤지펀드가 연합해 한국 기업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 경쟁력 강화에 몰두해야 하는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아야 할 수도 있다.
재계 주요 기업 [사진=뉴스핌 DB] |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은 자회사가 임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해를 일으킬 경우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다.
현재 상법은 주주가 이사를 상대로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표소송만 인정하지만 개정안은 자회사의 이사가 문제를 일으킬 때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모회사 발행 주식 전체의 0.01%만 보유해도 전체 계열사를 상대로 소 남발이 가능하다. 자회사 이사들이 소극적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상법 개정안에서 빠졌던 집중투표제도 부활할 가능성이 커졌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선임되는 이사가 3명이면 1주당 3표다. 특정 세력이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를 '표몰아주기'를 통해 이사진에 포함시킬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도 투기적 자본에게 공격 여지를 넓혀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제도는 감사위원회 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는 제도인데 회계정보 등 기업 핵심 정보에 외부인이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개정안에는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 금지 조항이 포함됐다.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재편을 위해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할하기 전에 자사주 비율을 늘리고 후에 자회사로부터 신주를 배정받아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 보통이다. 박 의원 발의안은 이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자사주를 늘린 SK그룹은 지배구조 재편 방향을 다시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pangbin@newspim.com |
같은 날 박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도 자본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총자산에서 특정 회사의 주식을 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만 자산운용비율을 계산할 때 분모는 시가로, 분자는 취득원가를 평가기준으로 적용해 산정한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시가평가액은 26조5800억원 규모다. 삼성생명 자산이 309조인 점을 고려하면 개정안 통과시 삼성전자 주식이 대거 주식시장에 쏟아진다.
재계 관계자는 "리쇼어링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면서 기업을 옭아매는 법안을 계속 내놓고 있다"며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권을 보호할 수단은 다 막아놓고 견제하는 수단만 늘리겠다고 하니 자본들이 외면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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