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적기' 평가받은 2018년, 강력한 주도 세력·공감대 실패
문재인 대통령, 일관된 개헌 추진에도 진영간 이견차 못 좁혀
"더 강력한 국민 공감대, 주도세력의 양보 없는 개헌 어려워"
[편집자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정치권도 불씨가 재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개헌은 쉽지 않다. 사회구조의 근간을 세우는 개헌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각 정파 세력간 지리한 공방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라는 전대 미문의 위기와 싸우고 있다는 점도 개헌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 문 대통령과 여권서 개헌 논의에 다시금 군불을 때는 것은 시대적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과연 개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뉴스핌이 개헌 논의의 화두와 쟁점을 짚어봤다.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이후 1987년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 '개헌의 적기'라고 평가됐던 2018년 개헌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2018년에는 1987년 이후 30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았던 개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의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 과정에서 모든 당의 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했다. 승자 독식 구조를 낳은 현재의 권력구조를 비롯해 지방분권, 기본권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강력한 개헌론자였다. 이번에야말로 개헌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격언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다.
여야가 개헌 논의에 들어가자 진영마다 세력마다 다른 입장이 발목을 잡았다. 시기마다 달랐던 정치세력의 정치적 이해 관계 역시 개헌을 어렵게 했다. 국회에서의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총대를 매고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했지만, 여야의 갈등을 넘지 못했다.
2020년이 새로운 개헌의 적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보수세력이 개헌저지선인 100석 이상을 갖춘 21대 국회에서도 개헌이 현실화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더욱 강력한 국민 공감대와 함께 강력한 주도 세력이 스스로를 양보하는 방식이 아닌 개헌 추진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관제개헌 저지 국민개헌선포 기자회견'. /이형석 기자 leehs@ |
◆ 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 처리"
강력한 주도세력에도 여야 이견차, 정치적 이해관계 막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 직후부터 개헌을 공언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일 만인 2017년 5월 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의 오찬에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개헌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한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치권이 의견 차이로 개헌안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정부 차원에서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이 분명한 개헌 추진 세력으로 나선 것이다.
이에 개헌이 여야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미 1987년 이후 30년 만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2017년 1월부터 가동되면서 기대는 더욱 높았다. 개헌특위는 기본권에 대해 논의하는 제1소위원회와 정부형태에 대해 논의하는 제2소위원회로 구성됐고 1년 동안 총 23차례의 전체회의도 열었다.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이 2018년 2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발의 개헌안' 준비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그러나 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야의 쟁점, 시기 등에 대한 이견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및 더불어민주당은 핵심인 권력 구조에 대해 대통령 연임제를 주장한 한편,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약화시킨 이원집정부제 성격을 선호했다. 대통령제의 근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 한국당이 의견을 모을 가능성은 크지 앟았다.
시기도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전 개헌을 통해 지방선거와 개헌 투표를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고 했지만, 한국당은 연말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는 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한 여권과 투표율이 낮을수록 유리한 야권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이같은 여야의 정쟁 속에서 1차 개헌특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기한이 종료됐다. 2018년 1월 15일 2차 개헌특위가 시작됐지만, 여야의 이견차는 여전했다. 여권은 '2월말 국회 합의→3월초 개헌안 발의→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구상에 발 맞추려 했지만,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사진 =뉴스핌DB] |
◆ 지지부진한 국회 논의에 문 대통령 직접 발의권 빼들어
강력한 지지율 엎고 개헌안 발의했지만, 여야 이견차 못 넘어
국회의 논의는 결국 지지부진했고, 문 대통령은 점차 대통령에게도 있는 개헌안 발의권을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국가의 책임과 역할, 국민의 권리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과 역량이 30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30년이 지난 옛 헌법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라갈 수 없다"면서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 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치 역량을 모아 문재인 개헌을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실제로 대통령 신년사 직후인 1월 15일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관제개헌 저지 및 국민개헌 선포'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장외투쟁에 나섰다.
결국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2018년 2월 13일 국민개헌자문특위를 통해 정부 개헌안 마련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2018년 3월 26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018년 5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개헌안 철회를 요청하는 야3당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2018.05.23 kilroy023@newspim.com |
대통령 개헌안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치권은 여야 원내대표를 대표로 개헌 협상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권력구조와 개헌 시기에 대한 지리한 공방만을 벌였다. 6월 개헌을 위해 필요한 국민투표법 개정이 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 여부 등 다른 쟁점에 막히면서 여야는 국민투표법 개정 데드라인인 2018년 4월 23일도 넘겼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발의 시점으로부터 60일인 2018년 5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불성립되면서 자동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했지만, 야권 의원들이 본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개헌안이 폐기된 2018년 5월 15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국회는 헌법을 위반했고, 국민은 찬반을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며 "이번 국회에서 개헌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기대를 내려놓는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개헌안을 따로 발의하지도 않았다"면서 "많은 정치인이 개헌을 말하고 약속했지만, 진심으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분은 적었다. 언젠가 국민께서 개헌의 동력을 다시 모아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dedanh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