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사드 때보다 심각...신중히 검토"
고가 패션 재고 많은 업체가 가장 유리해
[서울=뉴스핌] 구혜린 기자 = '개점휴업' 상태인 면세점들이 정부에 면세품 재고를 내국인에게 팔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유례없는 고시 개정을 검토 중이다.
내국인에 한시적 판매가 허용될 경우 고가 패션 아이템 재고가 가장 많은 신세계디에프에서 수혜를 가장 많이 볼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사드 때 불발된 면세품 내국인 판매...이번엔 다르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관세청은 주요 면세사업자 및 한국면세점협회가 요구한 '재고 면세품의 내국인 판매'를 검토 중이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 신세계디에프 등 국내 대기업 면세 사업자들은 지난 7일 관세청에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이를 요청했다.
대기업 면세사업자의 재고자산 추이. 2020.04.20 hrgu90@newspim.com |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점들로부터) 건의를 받고 신중히 검토 중에 있다"며 "현재 상태에서 당장 실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현 규정을 개정하더나 효력을 잠정적으로 보류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면세품 판매 규제 완화는 이번이 처음 요구된 게 아니다.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이후 면세 업황이 악화된 때에도 면세점들은 관세청에 동일한 요청을 했다.
당시 불발된 내국인 재고 판매가 이번엔 허용될지가 면세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관세청이 사드 사태 때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업황 악화가 더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사드 사태 당시에는 (재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며 "그때도 할 수 있는데 안 한 건 아니고, 개정할 만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금은 사드 때보다 더 시기가 엄중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면세 업계 역시 정부의 태도가 이번엔 다르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가 아니므로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며 "적어도 인천공항 임대료를 깎는 문제보다는 덜 소극적인 듯하다"고 말했다.
◆내국인 판매 허용시 고가 재고 많은 업체 수혜?…기준 모호해 '첩첩산중'
코로나19로 개점휴업 상태인 면세점들에게 재고 소진 기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면세사업 특성상 이런 재난으로 이용객이 확 줄어들 때 쌓이는 재고는 상당한 골칫거리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쌓여있는 재고의 양은 약 3조원 규모다. 면세점 재고는 각사가 자체 물류센터에서 관리한다. 관세청이 협회에 면세품 재고 관리 운영을 위탁 허용했으나, 재고 전산 데이터를 업체가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각사가 관리 중이다.
면세품의 내국인 판매 허용시 가장 수혜를 볼 사업자는 신세계디에프다. 신세계디에프는 재고자산 규모(6369억원)로는 롯데(1조731억원), 신라(7209억원)에 이어 3위에 그친다. 다만, 인천공항 2터미널에서 재화·피혁 판매 사업권을 유지하고 있어 타 사업자 대비 명품 패션잡화를 판매하는 매장 수가 더 많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품 재고 내국인 판매 허용시 모든 사업자들이 수혜를 보겠지만, 특히 고가의 재고가 많은 사업자가 유리하게 될 것"이라며 "면세점들이 관세청에 한시적 내국인 판매 허가를 강하게 요청한 품목도 패션 아이템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한시적 판매를 허용한다고 해도 기준을 정하는대도 첩첩산중이다. 우선 몇 년 묵은 재고를 판매 허용해야 할지 기준이 필요하다. 최소 몇 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해 가격을 맞춰야 할지도 문제다.
가장 난제는 판매처를 어디로 한정해야 할지다. 벌써 주요 백화점들은 판매 채널로 지정되는 데 대해 고개를 저었다. 백화점은 면세점과 달리 브랜드가 직접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조율이 어렵기 때문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동일 브랜드도 중간 벤더(공급사) 사업자가 다 다르기 때문에 판매 제품에 대한 각 벤더와의 협의도 필요하다"며 "허가가 떨어지더라도 세부 지침 마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rgu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