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선에선 미국 설득했으나 트럼프가 불만
코로나19 여파로 추가 대면협의도 쉽지 않아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잠정 타결'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에 따라 SMA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6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우리 측이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 대미 무역흑자 혹 감소,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 부담 등을 내세우며 미측을 설득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봤던 상황인데 다시 뒤집힌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한미 협상팀이 분담금 총액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미가 실무급에서 조율한 금액은 전년의 1조389억원 대비 10%대 오른 금액으로 알려졌다. 미측이 협상 초반 50억달러를 요구하다가 다소 금액을 낮춰 30억~40억달러를 제시한 것과 차이가 상당하다.
협정 적용 기간을 5년으로 늘리자는 실무진의 잠정 합의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SMA는 지난 1991년 1차 협정 이래로 지난번 10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년 계약으로 이뤄졌다. 한국인 근로자 문제 등 주한미군 주둔 안정성을 더욱 보장하기 위해서도 다년 계약이 필요하다는 데는 한미가 모두 동의하고 있다.
관건은 총액과 연동되는 연간 인상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분담금을 최대한 낮출 경우 남은 계약 기간 인상률을 매년 높이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지난 8·9차 SMA 때는 첫해 상승률을 비교적 높게 하고 다음 해부터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되 4%가 넘지 않는 수준으로 했다.
협상의 핵심인 총액이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만큼 한미 협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분담금 대폭 인상을 계속 요구할 경우 협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 올해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높은 인상률을 달성해야 홍보에도 유리하다.
또 다른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한미 협상팀에서 만든 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비토를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협상은 둘 중 하나"라며 "미국이 입장을 바꾸든지, 한국이 새롭게 총액을 높이든지"라고 전했다.
최근 미국의 발언을 살펴보면 '잠정 타결'이 이뤄진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클라크 쿠퍼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협상은 계속 됐고,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며 합의가 이뤄지면 그것은 상호 유익하고 공정한 합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같은 맥락의 이메일을 한국 특파원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2일 '김칫국 마시다'라는 한국 속담을 자신의 트위터에 인용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한국 문화를 존중하고 김치를 즐겨 먹기 때문에 그 트윗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명했으나 그가 협상 타결 가능성을 먼저 언급한 한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겨냥했다는 인상은 지우기 힘들어 보인다.
한미는 11차 SMA를 위해 지난달까지 7차례 회의를 열었다. 아직까지 추가 협상 일정은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8차 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쿠퍼 차관보는 "우리는 면대면 회의를 선호하고, 서울에 있는 동료들도 대면을 선호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로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면 접촉을 잡기가 쉽지 않다. 우리측 협상대표로 지난달 미국을 다녀온 정은보 방위비분담금협상대사도 지난 4일에야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에서 해제됐다. 미국 협상팀을 한국에 부르는 것 역시 코로나19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협상이 열려도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상호 유익하고 공정한 합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쉽게 말하면 '증액'이다. 총선을 앞둔 지지층의 여론과 향후 국회 비준 절차 등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가 기존에 알려진 잠정 합의안보다 높은 금액에 동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