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반기 7조6147억...연기금과 보험사가 절반씩 투자
선순위·A급 메자닌으로 쇼크 적어, 상품 내역 몰라 큰 위험
[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최근 국제 유가 급락으로 에너지 기업을 다룬 채권과 금융상품들의 손실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국내 연기금과 운용사들의 자금도 수조원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신용도가 낮은 미국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대출을 묶어 만든 상품인 대출담보부증권(CLO)에 국내 연기금과 운용사들이 2016년부터 투자를 확대, 투자잔액이 7조여원에 달한다.
[그래픽=김아랑 미술기자]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보험·증권·자산운용사 등이 CLO에 투자한 규모는 7조6147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중 보험사의 투자액은 3조2743억원으로 절반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2014년 말 1조5929억원에서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규모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잔액도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나, 최대 5000억원 적거나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CLO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대출을 묶어 만든 커다란 '포대자루'라고 할 수 있다. CLO는 2008년 금융위기의 시발점이됐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기초자산으로 한 부채담보부채권(CDO)과 유사한 구조다.
2008년 이후 레버리지론이 성장하면서 CLO 시장도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저금리가 만연해짐에 따라 최대 5~6% 수준인 금리는 매력적인 투자시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유가하락으로 에너지기업의 도산 가능성이 커지자 덩달아 CLO의 리스크도 확대됐다.
뉴욕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유(WTI) 배럴당 31.73달러로, 한주동안 무려 23.13%가 감소했다. 최진영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미 에너지기업 40곳 가운데 38곳은 부채비율이 100% 미만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당시 17곳만이 100% 미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안정된 수준"이라며 "다만 저유가 장기화 시 낮
은 유동비율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2016년 수준까지는 아니겠지만, 파산 기업 수는 전년보다 한층 더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CLO의 대부분은 선순위 채권과 A등급 메자닌채권이기 때문에 우선 변제를 받아 당장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품 구조상 후순위채권이나 낮은 등급의 채권이 먼저 상환문제를 겪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마 보험사들 위주로 CLO를 사들였을텐데 AA등급 이상만 취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내기관들이 투자하는 선순위채도 상환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 준비 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월17일 356bp(1bp=0.01%p)였던 스프레드는 한달만에 742bp(3월 12일)까지 급등했다. CLO 상품은 하이일드 채권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포함돼 있어 금융위기시 '뇌관'이 될 수 있다.
유승우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만일 CLO를 구성하고 있는 채권이 후순위거나, 기업들이 에너지 업종이나 코로나19에 영향을 받는 업종이라면 피해가 더 커질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광열 NH투자증권연구원은 "만일 금융시장이 더 악화되면 CLO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에너지 기업 비중이 높고 일반 하이일드 채권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도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상품 설계구조도 문제다. 자세한 상품 자산과 투자 방식을 뜯어보기 전엔 어떤 기업의 채권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위 등급조달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신용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용부도 위험에 처한 기업이 빌린 대출이 포함된 CLO도 '트리플 A'의 높은 등급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채권발행과 달리 신용등급을 공시할 필요가 없으며 주관은행의 심사만 통과하면 대출이 집행되고 관련 대출들을 묶어 CLO의 형태로 유동화시키는 비중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광열 연구원은 "CLO 상품에 포함된 기업이나 채권들을 파악하기 어렵다는게 문제"라며 "워낙에 들어간 기업이 많고 미국에서 만들어져 넘어오는게 많아 만일 디폴트가 터지더라도 대응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lovus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