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파동때 당이 싫어 떠났던 보수 원로…4년만에 돌아와
청년·여성에 방점 두고 인재 영입…21대 국회 '판갈이' 예고
한국·새보수당 "공관위원장에 적합한 분"…변수는 보수통합
[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긴 말 필요 없다. 지금은 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 8월 자유한국당 연찬회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한국당 의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정부여당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 중진 의원들, 개혁 모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초·재선 의원들을 향한 일갈이었다.
그런 그가 진짜 '공천권'이라는 진짜 칼을 쥐고 돌아왔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 황교안 대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김 위원장은 "판을 갈겠다"고 일성을 전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2020.01.17 leehs@newspim.com |
◆ "솔직히 당 싫어 떠났다"…4년만에 돌아온 보수 원로
김 위원장은 14~18대까지 5선의 의원을 지냈다. 17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고, 18대 국회에서는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김 위원장은 오랜 시간 함께했던 친정을 떠났다. 공천 파동을 지켜보면서 당에 대한 실망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당에서 이번 21대 총선 공관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도 그는 고민과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나는 솔직히 당이 싫어서 떠난 사람이었고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럼에도 4년만에 당에 돌아오게 된 것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너무나 위중한 생각이 들었다.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나라는 한 쪽으로 치우쳐가면서 나라의 미래가 절망적인 어둠으로 짙어져간다는 생각을 했다"며 미력하고 부족하지만 국가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나마 보답하기 위해 (공관위원장직을) 감당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다고 다시 당원이 될 생각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김 위원장이 한국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철하다. 지난해 8월 한국당 연찬회에서 100명이 넘는 현역 의원들 앞에서 그는 선배로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연사로 나선 김 위원장은 "여러분이 모셨던 대통령은 탄핵돼 감옥에 갔고 주변 인물들은 모두 적폐 대상이 됐다. 당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지지층은 약하다. 여러분은 다 죄가 많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무엇을 얻고자 하지 말고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라"며 의원들에게 의원직을 내걸고 싸울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다선의 중진 의원들에게는 "내년 총선에서 실패하면 한국당의 미래는 없다"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격전지나 험지 출마를 자원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1.17 leehs@newspim.com |
◆ "21대 국회, 판갈이 성공해 새로운 인재 많이 영입하겠다"
그만큼 김 위원장이 바라보는 한국당의 현실은 엄중하다.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그는 직접 칼을 들고 당에 복귀했다.
김 위원장의 첫 일성 역시 '판갈이'였다. 그는 "나는 물갈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지금까지 물갈이를 하라는 요구에 국회는 물은 갈지 않고 물고기만 갈았다"며 "오염된 물에 물고기를 새로이 넣어봐야 죽을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만은 물갈이, 판갈이가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판을 갈고 새로운 인재들을 많이 영입하는 작업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청년과 여성에 핵심 방점을 두고 인재 영입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신입들이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국형 완전국민경선제 등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이미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의 30%를 컷오프하고 50%를 물갈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의원들 중 12명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으로 아는데 정말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이분들 결단이 결코 헛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매서운 판갈이를 예고한 셈이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이번에 공관위원장직을 제안 받으면서 황 대표에게 전권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 역시 김 위원장의 뜻에 따라 전권을 부여키로 했다.
김형오 위원장은 "이런 막중한 일을 어떻게 전권 없이 간섭을 받으면서 하겠나.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간섭받지 않을 것"이라며 "공관위원장 직을 걸고 공관위원들이 소신과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가 울타리가 되고 방파제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용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해 8월 2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경제 FIRST! 민생 FIRST!' 2019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특별강의를 하고 있다. 2019.08.27 kilroy023@newspim.com |
◆ 한국당·새보수당 "공관위원장으로 적합한 분"…변수는 보수통합
김형오 공관위원장에 대한 한국당 안팎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김 위원장이 워낙 보수 원로 격인데다, 정치에 사심이 없는 인물이어서 신뢰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앞으로 더 바라는 것이 없는 분이지 않나"라며 "그러니 욕심, 사심 없이 공관위원장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인 새로운보수당 내에서도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다.
한 새보수당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은 워낙 존경하는 선배"라며 "공관위원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보수 통합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김 위원장이 공관위원장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