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갑질'을 사장에게 신고해야 하는 모순
갑질방지법 시행 6개월...실효성 지적 나와
4인 이하 사업장 적용 제외도 문제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 A씨는 최근 회사 팀장으로부터 "시X, 일 못해 먹겠네" 등 욕설과 함께 폭언을 들었다. 팀장은 고함을 내뱉으며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A씨가 업무 처리 과정에서 실수했다는 게 이유였다. 직장 내 '갑질'이라고 생각한 A씨는 법에 따른 절차대로 사용자(사장)에게 신고했다. 그러나 사장은 가해자인 팀장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모든 처리 권한을 일임한 채 묵인·방관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격리 등 기본적인 후속 조치도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15일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 119가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갑질 제보 1320건을 살펴본 결과, 갑질에 시달린 직장인들이 회사에 신고했어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조치 의무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를 받은 회사는 ▲신고 무시 ▲조사 해태 ▲늑장조사 ▲보호조치 거부 ▲불리한 처우 등으로 대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갑질 신고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회사는 두려움 없이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고 있다는 게 직장갑질 119 측 설명이다.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을 맞이하지만 법에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사장 또는 사장의 친·인척 갑질을 사장에게 신고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문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갑질 119는 "노동부는 (갑질) 행위자가 사용자일 경우 노동부에 신고하라고 하지만 사용자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 행위자일 경우 괴롭힘 사실을 신고하더라도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더욱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4인 이하 사업장 내 갑질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모 4인 이하 복지기관 시설장은 회의 때마다 "사무실 일을 밖으로 알리는 직원은 모가지를 자르겠다"고 협박했다.
B씨는 시설장을 만류했으나 "이런 개같은 X아. 다른 직원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너만 말대꾸냐"는 폭언을 들어야 했다. B씨는 "시설장을 매일 봐야 하는데, 그 욕설이 잊히지 않아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출근하는 게 지옥 같다"고 전했다.
직장갑질 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 친·인척 갑질은 회사가 아닌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4인 이하 사업장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법의 실효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시행령 개정 및 노동부 지침 변경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