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국민 정체성이자 뿌리…전시 공간·기회 부족
전문가 의견 빠진 정책 불필요…정부 적극 대응 필요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아메리카노라면 하루에 몇 잔을 마셔도 전통찻집은 1년이 지나도 가지 않는다. 휴대폰 음악리스트에 방탄소년단 곡은 있어도 국악은 한 곡도 없다. 발음도 어려운 외국 명품브랜드는 잘 알아도 우리 명품 공예브랜드는 모르는 게 아쉽지만 현실이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하면 '케이팝'을 떠올린다. 지난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발표한 '2018년도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한식(40%)을 가장 많이 떠올렸고 케이팝(22.8%), 한국문화(19.1%), 케이-뷰티(14.2%)가 뒤를 이었다.
케이팝을 통한 문화 산업에 시동을 걸고 있는 정부지만 케이팝에 의존한 전략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문화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지속가능한 문화 국가 융성을 위해 한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전통문화 정책과 홍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소윤 한국고미술협회 부회장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전통미술이나 도자 등을 볼만한 공간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신 부회장은 "한국을 대표할 전통 예술 작품을 보려면 도대체 어디 가야 할지 모른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마찬가지다. 전통은 우리 문화의 뿌리인데 이를 볼 곳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언급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18.08.07 leehs@newspim.com |
신 회장은 우리 미술을 선보이는 자리와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미술협회는 인사동 등에서 전시를 꽤 열었다. 전시 한 번 여는 게 쉽진 않은데 성과를 거둔 거다. 전시를 열면 적어도 몇 만명은 찾아온다"며 "전시를 최대한 많이 열고,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칠용 (사)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 회장은 전통 문화가 국민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가 정부 정책에 전문성이 없어서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내 공예과 출신이 드문 것으로 안다. 정부는 그런데 각 분야별 협회와도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현실을 반영한 정책이 나오겠나"고 말했다. 3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 따르면 10년 이상 공예분야 경력자 또는 석박사급 직원을 전문가급으로 보면 전체의 10%(임원 및 정규직 기준), 5년 이상 경력자는 전체의 30%다.
이 회장은 "공예는 수천년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문화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정책에는 연극, 영화, 체육, 관광은 있는데 공예는 분리돼 있지 않다. 공예는 미술 영역 중 하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예는 전통, 근대, 현대로 분리돼 있어야 한다. 일본만 해도 근대 공예가 있다. 근대와 현대를 혼합시키니 정책에 혼선이 오는데 이는 공예가로서 수치심도 생긴다. 공예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책의 부재, 정책의 혼란에서 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선진국에는 공예라는 범위 안에 디자인이 들어가있다. 우리나라만 공예와 디자인을 똑같이 놓고 싸우게 만든다"면서 "대학에 공예과는 없는데 디자인과는 넘쳐난다. 디자인 교수들이 문화재 장인을 뽑는 게 현재 문화정책이다. 공예를 제대로 알고 정책을 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018.08.07 leehs@newspim.com |
특히 이 회장은 겉으로만 내세우는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의견을 듣고 현실에 대응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문체부 장관, 문화재청장이 행사에 와서 축사하고 테이프 커팅하는 건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작업(공예)하는 사람들 직접 만나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1년에 한번이라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사정이 안 좋으면 정부가 세금 징수를 유예하고, 농산물이 안 팔리면 정부가 사주기도 하는데 문체부는 뭘 하나"라며 "수십 년 봐왔지만 문화부 건물 마당에서 공예품을 파는 거 못봤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청와대 사랑채와 인사동 한국관광명품점(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운영하는 한국전통기념품 판매점)에 전통 공예품을 팔고 있는데 직원들이 판매와 운영을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직원들은 공예품을 안 팔아도 연금이 나오니 판매에 대한 의욕이 없을 거다. 그 좋은 자리에 전문가들을 왜 참여시키지 않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으로 평화를 담다' 전시회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8.08.07 leehs@newspim.com |
이칠용 회장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공예진흥사업에 앞장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궁에 한복 착용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 복장은 한복인데 신고 있는 신발은 운동화다. 이런 부분을 보완할(현대화 혹은 한복의 개량화 및 생활화) 대책을 세우는 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원이 해야할 일"이라고 주문했다.
이어 "한국 진흥원 1년 예산이 260억원이다. 전국 공예인 500명을 뽑아서 1년에 5000만원 3년씩 지원하면 공예부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전공예 장인인 길정본 선생을 예로 들며 또다시 일본에 우리 문화를 뺏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길정본 장인의 실력은 이미 일본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있다. 이칠용 회장은 "우리가 우리 문화를 들여다보지 않는 동안 일본은 또다시 우리 전통문화를 눈여겨 보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 전통 공예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며 "우리 장인들 국가에 절대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 뭐하러 손 벌리냐고 한다. 공무원들은 그러니 정신차려야 한다. 이번 정부가 지난 정부처럼 썩어빠지면 되겠는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