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마주한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 3일 개막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누구나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난다. 미술 작가들에게는 '영감'을 얻을 찰나일 거다. 선물과도 같은 이 시간은 예술적 감각과 어우러지고 작가의 손을 통해 작품으로 세상에 소개된다.
사비나미술관이 2020년 신년 특별 기획전으로 마련한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작가가 창작에 영감을 주는 최초의 이미지를 발견한 생생한 순간과 그 특별한 발견을 실행으로 옮겨 창의적 행위로 통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세렌디피티'는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이다. 남다른 안목으로 세렌디피티를 만난 작가들은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 작품으로 가공한다. 피카소의 경우 자신의 아파트 주변에서 주워 모은 폐품들을 분류하다 작품을 만들었다. 가죽이 늘어지고 스프링이 없는 자전거 안장은 황소머리, 알파벳 M자 형태의 운전대 손잡이는 황소 뿔로 변신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천년-소나무 2019-15'에 대해 설명하는 이길래 작가2020.01.02 89hklee@newspim.com |
'소나무 작가'로 알려진 이길래 작가는 동파이프로 소나무를 제작했다. 그가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1년 충북 괴산 작업실에서 대학 출강하던 시절이다. 고속도로의 화물차에 적재된 동파이프를 우연히 본 순간, 작가는 머릿속에 몸을 구성하는 최소 세포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는 기술문명의 상징인 동파이프와 생명의 상징인 세포의 이중적 속성을 결합한 작품 구상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제작한 '천년 소나무 2019-15'는 절단한 동파이프를 활용해 나무껍질과 소나무 잎을 촘촘히 이어놓았다. 실제 나무의 질감과 형태를 자세하게 묘사해 눈길을 끈다.
이길래 작가는 "동파이프를 망치로 때려 타원형으로 만들고 나무 표피를 표현했다. 마치 마띠에르 느낌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나무'라고 소개했는데 기자들이 아예 '소나무'로 하면 어떻겠냐더라. 그 의견을 수용해 지금과 같이 '소나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동파이프가 나무 표피를 잘 표현하고 있더라"고 설명했다.
엽전과 청화백자로 만든 성동훈 작가의 '산할아버지'도 눈길을 끈다. 작품의 시작은 2009년 국제사막 프로젝트를 위해 몽골 욜링 암(독수리계곡)을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뒤편에서 돌로 만들어진 야생 산양을 발견한 작가는 몽골에 서식하는 산양을 할아버지로 부르며 오랜 친구, 가족, 수호신처럼 여기는 주민들에 충격을 받았다. 산양의 형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구현하겠다는 창작적 아이디어는 그 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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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훈 작가는 "당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고 '팩트는 확인해야한다'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몽골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산양을 의인화하고 존중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인상적이었고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입체 예술가로서 재료의 선택이 중요했다. 어떤 재료냐에 따라 메시지는 달라진다"며 "클래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청화백자와 엽전이다. 청화백자는 동아시아를 상징하고, 엽전은 '물물교환'의 상징, 즉 문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함명수 작가의 '공격성'을 잃은 듯한 총을 그린 작품도 전시돼 있다. 2008년 그린 'Pistol'과 2019년 완성한 'Alive'다. 함 작가의 세렌디피적 발견은 1991년 우연히 자신의 작업실 책상에 놓인 '새로움의 충격 모더니즘과 도전과 환상'이란 책 표지에서 비롯됐다.
책 표지에는 독일 초현실주의 여성작가 메레 오펜하임의 '모피 찻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강렬한 이미지가 번뜩이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모피 이미지는 작가의 기억에 새겨진 어릴적 어머니와 누이가 털실 뜨개질하는 모습과 결합됐다. 이후 그는 오직 붓 터치만으로 털의 질감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갖게됐고 다양한 실험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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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수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과거 해골도 그려봤지만 너무나 직접적이었다. 그러다 공격성이 있는 '총'에 은유적 비유를 해 작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Alive'의 경우 배경에 꽃과 풀을 총 다음으로 그렸다. 총 손잡이 부분은 마치 '죽음'을 뜻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공격성을 잃은 총이다. 뒷 배경은 새로운 생명이 살아나고 있다. 배경은 붓으로 칠하고 긁었는데, 이는 생성과 소멸의 연속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함명수 작가는 고흐가 사용한 권총으로 추정된 것을 소재로 작업하고 있다. 현재 드로잉 중이다. 작가는 자신이 그린 총 작업에 이어 500호 캔버스에 고흐의 권총을 소재로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을 담을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운, 김범수, 김성복, 김승영, 남경민, 베른트 할르헤르, 성동훈, 손봉채, 양대원, 유근택, 유현미, Mr.Serendipitous(윤진섭), 이길래, 이명호, 이세현, 주도양, 최현주, 한기창, 함명수, 황인기, 홍순명(21명)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작품 76점이 소개된다. 3일부터 4월 25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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