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데뷔 20년차를 넘긴 배우 이동건이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다. '보디가드' 속 프랭크 파머 역을 맡은 그는 올 연말 완전히 새로운 도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보디가드'를 한창 공연 중인 이동건과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보름 넘게 본 공연을 올린 그는 "이제 적응은 충분히 됐다"고 웃어보였다. TV에서 자주 보던 친숙한 얼굴이지만 무대에서는 더없이 신선한 이미지로 관객과 만나는 그의 감회가 새로울 법했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보디가드' 공연 장면 [사진=CJ E&M] 2019.12.23 jyyang@newspim.com |
"첫 공연 하고 내리 3회 하면서 큰 실수가 없었어요. 굉장히 마음을 놓게 됐는데 그 뒤론 자잘하게 아쉬운 부분이 나오더라고요. 매 공연 오히려 긴장을 놓치 않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죠. 2회 공연 하는 날에는 몸도 지치고 좀 전에 했던 연긴데, 긴장을 좀 놓게 돼요. 그래도 스스로 계속 가져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크게 실수할 거리들이 많지는 않지만 액션과 음악의 합이 맞아야 하는 포인트들이 있어요. 조금만 놓쳐도 김이 새버리거든요. 1막 클럽에서 레이첼을 구해서 안는 장면이나 스토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 그래요. 직접 객석에서 보니까 잘 맞을 때와 아닐 때 차이가 꽤 크더라고요. 박자와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는 데 신경을 쏟고 있죠."
이동건은 최근 3년간 브라운관에서 다양한 작품과 역할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래서 이번 무대 도전이 너무도 뜻밖의 결정이자 큰 도전으로 느껴졌다. 이동건은 "보디가드라는 작품이라 뮤지컬을 선뜻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요점만 말씀드리면 '보디가드'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춤과 노래가 없어서죠.(웃음) 아무래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부담스러운 요소가 많을수록 피하게 되잖아요. 뮤지컬은 제가 도전하고 싶은 분야인데, '보디가드'는 거절할 만한 부담스러운 점이 적었죠. 연기의 성격 자체가 드라마나 영화와 굉장히 달라서 애먹기는 했어요. 공연에 돌입하기 전 '나는 좀 달라도 되지 않을까. 그게 저의 뮤지컬 연기의 색깔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무대에 맞는 연기가 필요해요. 저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해도 카메라 앞에서 하던 것과 무대 연기의 중간 지점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저만의 연기를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죠."
그렇다면 '보디가드' 외에도 다른 뮤지컬에 도전할 의향이 있을까. 답은 의외로 'YES'였다. 이동건은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발을 들인 게 맞다"고 시원하게 말했다. 데뷔 때부터 줄곧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해왔지만 무대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보디가드' 공연 장면 [사진=CJ E&M] 2019.12.23 jyyang@newspim.com |
"1년에 한 작품 정도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흐를 수록 배우로서 성숙해지고 달라지는 점은 있지만 1년에 두 작품씩 3~4년 해보니까 굉장히 제 이미지나 연기가 소모되는 걸 느꼈어요. 시청자들도 지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죠. 무대에서 뭔가 다른 걸 1~2년에 한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연기자로서 굉장히 큰 무기가 될 것 같아요."
극중 프랭크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고, 레이첼과 로맨스 연기를 하는 신에서도 그동안 안해봤던 액션이 종종 등장한다. 마지막 커튼콜에 프랭크의 막간 댄스타임까지, 어쩌면 이동건은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건 프랭크를 위한 신"이라며 오히려 의욕을 내비쳤다.
"무대 위에서 제가 하는 큰 동작이나 연출적 장치들은 모두 프랭크를 위한 신들이에요. 클럽신이나 마지막 오스카 신이 과도한 액션 같아도 프랭크가 부각되고 잘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죠.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관객이 그 신들에서 프랭크의 존재감과 임팩트를 받았으면 했어요. 정말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요. 그런 욕심이 너무 커서 멋있어 보이고 싶다거나 내려놓는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어요. 어쨌든 저는 배우니까요. 커튼콜 댄스도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여기서 내가 뭘 해도 웃기지 않나?' 싶어서요. 하하."
이동건은 극중 나오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들 중 '런투유(Run To You)'가 가장 좋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런데 몇 차례 공연을 하다보니 그의 마음은 '원 모먼트 인 타임(One Moment In Time)'으로 옮겨갔다. 프랭크와 레이첼이 서로 거쳐온 과정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하고 쌓아온 감정들을 표현해주는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곡이다.
"이 곡이 시작되면서 제가 둘의 사랑에 몰입하게 돼요. 레이첼과 쌓아온 감정들이 그 무대에서 점차 고조되죠. 레이첼이 저를 의식하면서 불안하게 무대를 시작했다가 본인 페이스를 찾고 멋진 무대를 보여주고, 스토커가 총을 겨누면서 저는 뛰어 들어가요. 모든 부분에서 클라이막스를 맞는 신이에요. 노래가 시작되고, 총을 들고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그 시야 자체가 진짜 프랭크가 된 것 같거든요. 제가 들어갈 타이밍을 기다리면서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기분좋게 몰입하게 돼요. 스스로 슬로우모션이 걸리는 느낌이 들 정도죠. 반대쪽에서 라이트가 딱 들어오는데 신호를 받는 것처럼 기분좋게 소름이 돋아요. 굉장히 흥분되고 더없이 집중되는 순간이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2019 '보디가드' 공연 장면 [사진=CJ E&M] 2019.12.23 jyyang@newspim.com |
'보디가드'의 연출가는 이동건에게 프랭크와 비슷한 성격인 것 같다는 얘길 해줬다고 했다. 그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점이 많았다"고 프랭크 역에 애정을 드러냈다. 실제로 아내와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그 역시 한켠으로 '보디가드' 역할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를 또 하나 얘기했다.
"아내가 뮤지컬 한다니까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 결정을 한 게 대단하다고요. 기대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노래가 없다고 했더니 아쉬워했죠. 자긴 엄두도 못낼 일이고 상상도 못할 일인데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게 대단하대요. 응원도 해주고, '크게 실수 안했어?' 묻고 안도하고요. 가족이니까요. 아이를 보면 저도 보디가드 같단 생각을 하죠. 언젠가 윤희 씨가 묻길래 '당연히 너와 아이의 보디가드 아니냐. 남편이고 아빠인데'라고 대답했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가 있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당연히 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이 작품을 하면서 이동건이 이루고 싶은 점이나 목표에 관해 물었다. 그는 "보디가드의 삼연에 설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소 소박한 꿈을 얘기했다. 아직까지는 없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는 스스로 만족하는 연기를 하는 날을 위해 커튼콜 댄스를 준비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덧붙였다.
"막연하게 갖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보디가드'의 삼연에 서는 거예요. 그게 지금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유죠. 무대와 작품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또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정말 기쁘겠죠. '브로드웨이 41번가' 얘기도 한 적이 있는데, 언젠가 꼭 해보고 싶고요.(웃음) 일요일에 공연 하루 쉬는데 '빅피쉬' 보러가요. 많이 보고 도전할 수 있는 역이 있을지 생각해보려고요. '이동건 봐서 진짜 망했다'는 말 안듣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공연을 했을 때 하는 춤을 하나 정하고 싶어요. 커튼콜 프랭크 댄스신에서 그 춤을 보여줄 날을 기다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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