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조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당일 해질녘에, 다른 한 명은 다음날 오전에 대회 마쳐
존슨, 플레이중단 신호 울리기 전 서둘러 18번홀 티샷…우승 다툼하던 오르비츠는 익일 속개하기로 각자 선택
골프 규칙엔 '홀 플레이 도중 중단 신호 울리면 계속 플레이하거나 중단하는 것 중 선택 가능'하다고 규정
[뉴스핌] 김경수 골프 전문기자 = 스트로크플레이 방식의 골프경기에서는 2~4명이 한 조로 플레이한다. 같은 조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플레이해야 한다. 또 위원회가 승인하지 않는한 선수들은 라운드 내내 같은 마커(자신의 스코어를 적는 사람)를 써야 한다.
지난주 멕시코 엘 카멜레온GC(파71)에서 열린 미국PGA투어 마야코바 골프 클래식(총상금 720만달러)은 악천후로 파행돼 월요일인 18일(현지시간) 아침에 끝났다. 브렌던 토드가 합계 20언더파 264타로 공동 2위 세 명을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1라운드를 금요일에 시작하다 보니 당초 4라운드를 열려던 일요일(17일)에 3,4라운드를 연달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그날 하루 36홀 플레이를 했다.
3라운드 후 조편성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4라운드에 적용했는데도 7명은 일몰에 걸려 월요일 아침에야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여기에서 평소 보기드문 장면이 나왔다.
카를로스 오르티즈가 18일 멕시코에서 끝난 미국PGA투어 먀아코바 골프 클래식에서 샷을 하고 있다. 그는 멕시코 선수로는 41년만에 미국PGA투어에서 우승하려고 특이한 선택을 했지만, 챔피언과 1타차로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사진=골프닷컴] |
잭 존슨(미국)-마크 허바드(미국)-카를로스 오르티즈(멕시코)는 3,4라운드에서 같은 조로 플레이했다. 이 조가 4라운드 17번홀을 마칠 즈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승에서 멀어진 존슨과 허바드는 좀 캄캄해도 4라운드를 마치고 싶어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다음 대회를 준비하거나 다른 스케줄이 있었던 모양이다. 항공편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오르티즈는 생각이 달랐다.
골프 규칙을 꿰뚫고 있던 존슨은 동반 플레이어가 17번홀을 홀아웃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얼른 18번홀으로 가서 티샷을 날렸다. 허바드도 곧이어 마지막 홀 티샷을 했다. 오르비츠만 클럽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후 6시11분에 일몰로 플레이를 중단한다는 신호가 울렸다.
플레이 중단과 관련해 골프 규칙 5.7b에는 '그 조의 한 플레이어라도 특정홀을 시작한 경우 플레이어들은 즉시 플레이를 중단할 것인지, 그 홀을 끝낸 후에 중단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스트로크플레이에서는 그 조의 다른 플레이어들의 선택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그 홀의 플레이를 계속하려는 플레이어는 자신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마커가 입회하는 경우에 한하여 플레이를 계속할 수있다.'고 돼있다.
존슨은 플레이중단 신호가 울리기 전에 18번홀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아래 서둘러 18번홀 티샷을 마친 것이다. 물론 신호가 울리기 전에 그 조의 한 사람이라도 특정홀 티샷을 했으면 그 홀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슨은 티샷 후 쾌재를 불렀다.
문제는 있었다. 독자적으로 그 홀 경기를 마치기로 했어도, 그러려면 반드시 마커가 있어야 한다. 허바드나 오르티즈가 플레이 중단 의사를 표명하면 존슨의 의도는 물거품이 된다. 마침 허바드도 18번홀 티샷을 한 상태다.
스트로크플레이에서 3명이 한 조일 경우 서로 엇갈려 마커가 된다. 예컨대 A는 B의 마커가 되고, B는 C의 마커, C는 A의 마커가 되는 식이다. A와 B가 서로 마커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존슨과 허바드의 경우도 3라운드 시작 때 서로 각각의 마커로 지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르티즈와 함께 엮어야 세 선수로 구성된 이 조의 마커 지정은 완성된다. 그런데 오르티즈는 18번홀을 플레이하지 않겠다고 하니, 세 선수의 얽히고설킨 마커 관계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골프 규칙 3.3b에는 '위원회가 승인하지 않는 한 플레이어는 반드시 그 라운드 동안 같은 마커를 써야 한다'고 돼있다. 18번홀을 마치기로 한 존슨과 허바드의 경기가 성립하려면 마커가 있어야 하고, 더욱 1~17번홀에서 그 역할을 했던 마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남았으므로 서로 마커가 되면 일단 '마커가 있어야 된다'는 조건은 충족할 듯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1~17번홀에서 오르티즈의 마커였을 것이기 때문에 마커 변경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마 두 선수는 위원회에 '절박한' 사정 얘기를 하고 18번홀에서 서로 마커가 될 수 있도록 승인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반 플레이어 두 명과 달리, 단 한 홀을 다음날 플레이하기로 한 오르티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이 코스는 마지막 9개홀에서 승부가 갈린다. 나는 그 가운데 중요한 1개홀이 남았다. 내일 좋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그렇게 결정했다. 사실 17번홀(파4) 두 번째 샷부터 시야가 흐릿해졌고, 퍼트할 때에는 라인을 읽기가 어려웠다. 비록 한 홀이지만 내일 아침에 홈 팬,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우승할 수 있다면 내 꿈이 실현된다고 봤다."
18번홀(길이 458야드)은 이 코스의 난도(難度) 랭킹 1위 홀이다. 최종라운드에서 버디가 2개밖에 안나왔다. 어려운 홀이기에 밝을 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하겠다는 오르비츠의 의도는 이해가 된다. 오르비츠는 더욱 1978년 빅토르 레갈라도 이후 멕시코 선수로는 41년만에 미국PGA투어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그 홀 스코어는 존슨이 보기, 허바드가 더블 보기, 그리고 오르비츠는 파였다. 오르비츠는 합계 19언더파 265타로 챔피언과 1타차의 2위를 차지했다. 존슨은 공동 23위, 허바드는 공동 58위에 머물렀다. ksmk754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