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법, 최근 항소심에서 '레깅스 촬영' 남성 무죄 선고
판결 알려지자 시민들 비판 이어져...전문가들 "현행법 모호"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약 8초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촬영한 각도가 엉덩이 등 특정 부위가 아닌 일상적인 시야라고 봤다. 또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어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촬영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논란이 뜨겁다. 법원은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판단하고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지만, 불법촬영 자체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건수는 △2016년 5185건 △2017년 6465건 △2018년 5925건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월별 평균 500건 정도가 적발된 것이다.
본 뉴스와 직접 관계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최근에는 초소형, 위장형 카메라까지 등장하면서 여성들의 불법촬영에 대한 불안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이에 이번 법원 판결을 바라보는 규탄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몰래 찍은 것을 불법이 아니라 '합법'으로 내린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 "성적 수치심보다 중요한 것은 남을 몰래 촬영했다는 것" 등 반응이 줄을 이었다. 현행법이 범죄 예방이 아닌, 또 다른 범죄의 가능성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부 커뮤니티 누리꾼들은 이번 판결 기사를 공유하며 "내일부터 촬영이다", "앞으로 레깅스 많이 찍어라" 등 비상식적인 발언도 쏟아내고 있다. 이미 불법촬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만큼, 이들의 행위를 단순히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행위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직장인 정모(28·여) 씨는 "레깅스는 내가 편해서 자주 입는 옷인데, 이제 누군가 나를 몰래 촬영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것 아닌가"라며 "법을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혀도 모자랄 판에 법이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하경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누군가 여성의 몸을 몰래 찍었고 법이 그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레깅스를 두고 선정성, 성적 수치심 논쟁으로 갈 것이 아니라 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모호한 기준을 문제로 지적하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법촬영에 해당하는 행위를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것을 의미한다. 신체 부위와 상황 등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매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적 수치심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법리 적용에 있어 해석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시민의식인 것처럼,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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