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2일 일본에 체류 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일손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기능실습생 제도에 이어, 지난 4월에는 새로운 체류(재류) 자격을 신설해 향후 5년간 최대 35만명의 외국인이 일본에 입국할 예정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신문은 지적한다. 이로 인해 일본에 실망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건설이나 농업 등에서도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뼈가 부러져도 일해야 했다"
설문조사는 올해 1~2월 아사히신문이 인터넷페이지를 통해 진행했다. 설문은 일본어·영어·중국어·베트남어 4개국어로 진행돼 500건 이상의 회답이 있었다. 일부는 지난 2월 아사히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됐다.
이 가운데 일본어가 아닌 언어로 온 답변은 베트남어가 20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중 다수가 기능실습생 제도로 일본에 들어온 경우로, 아사히신문은 이들 답변을 전문 번역해 분석했다.
이 가운데 2016년 7월 기능실습생으로 일본에 입국한 베트남 남성 만(23)씨는 설문 자유응답란에 "기능실습생으로 일본에 왔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인간으로서 권리와 존엄을 침해받았다"라고 적었다.
그는 "나처럼 나쁜 회사에 들어온 사람은 회사에서 차별을 받고 나쁜 대우를 받아도 자유롭게 회사를 바꿀 수도 없고, 집세도 비싸기 때문에 집이 낡아도 이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 일본에 도착해 기후(岐阜)현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했다. 금속 프레스 가공 일을 맡았던 그는 2017년 2월 용접기계 부품교환 시 버튼을 잘못 건드려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완치되기 전에 다시 일에 투입됐다.
그는 그 해 두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후 병원에서 실밥을 뽑아야 했지만 회사 측은 "눈이 내리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실밥을 빼야했다.
완치되지 않은 채 일을 계속해야했던 그는 더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듬해 초 회사에서 도망쳐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노동자 쉼터에 갔다. 그가 도망쳤을 때 회사에 두고왔던 짐은 모두 회사에서 소각됐다.
그는 쉼터에서 야채를 재배하고 쉬는 시간엔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하며 1년을 보냈다. 그는 기후현에서 진행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좋아했다"며 "선진국이고 월급도 높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기능실습생으로 일본에 오기 위해선 최대 100만엔 정도의 비용이 든다. 만씨는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일본에 올 때 이용했던 기능실습생 관련 베트남측 기관에 20만엔을 변제하지 못한 상태로 지난 5월 귀국해야 했다.
일본 가와사키(川崎)의 게이힌(京浜) 공업단지와 한 노동자의 모습. 게이힌 공업단지는 1950~1970년대 일본 고도성장을 이끈 4대 공업단지 중 하나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개선되지 않는 근로 조건…일본의 가치 하락으로
일본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만씨만이 아니다. 기능실습생으로 일본에 온지 1년이 됐다고 밝힌 한 베트남 노동자는 "생활도 일도 모두 어려워 최악의 상황으로 일본 정부나 법적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일본에 오기 전에는 일본에서 일하면서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꿈을 꿨지만 실제 하는 일이나 생활환경은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고 호소했다.
일본에 온지 3년이 된 베트남인 노동자는 "베트남 사람들은 근면하게 일하고 있지만 일본인 노동자만큼 존중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인은 우리를 값싼 노동력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며 "일본같은 자본주의 나라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잘 알고 있는 나라지만 지금 우리는 차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사카(大阪)에서 일하고 있다는 30대 베트남 남성은 "(기능실습생은)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고 심각한 산업재해를 겪은 사람도 있으며,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일본인 노동자도 같은 일을 겪는지 궁금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일 거라면 좋은 점만 바라지 말고, 힘들어 하는 점도 확실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이토 요시히사(斉藤善久) 고베(神戸)대학교 준교수는 "외국인 노동자, 특히 베트남 노동력을 필요로하는 나라들 간에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일본은 더이상 돈을 벌기에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다"라며 "일본인들이 일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능실습생 제도에 대해서는 오랜기간 열악한 대우가 비판받아와, 지난 2017년엔 기능실습생을 보호하는 '기능실습적정화법'이 시행됐다. 외국인기능실습기구가 설치되는 등 제도 운용이 엄격해지고 있지만 신문은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고 했다.
사이토 교수도 "노동조건에 관한 위반행위나 인권침해 행위 등의 조사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