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면 품은 안신부에 끌려…라틴어 연기 집중
"한국 영화 100주년, 소프트웨어에 신경 쓸 때"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아르마 루치스(빛의 무기)’ 소속의 구마 사제. 한국에 숨어든 강력한 악의 검은 주교를 찾기 위해 바티칸에서 왔다. 오직 신념과 의지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그는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 순간 젊은 남자가 찾아와 그를 구해주고, 그는 단번에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아챈다.
배우 안성기(69)가 영화 ‘사자’로 오랜만에 극장가에 돌아왔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가 구마 사제 안신부를 만나 강력한 악에 맞서는 오컬트 히어로물이다. 극중 안성기는 안신부를 열연했다.
“제 부분은 아니지만, CG가 제법 많은 영화죠. 영화를 보니 아주 공을 들였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도 잘 맞았죠. 안신부만 놓고 본다면 진지함과 부드러움, 따뜻함이 모두 녹아 있어서 좋았어요. 보통 한 선만 가는 경우가 많은데 안신부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죠. 시나리오 받을 때부터 그 지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 돌고 돌아서 저한테 온 게 아니니까 더 좋고 고마웠고요(웃음).”
모든 것이 흡족한 시작이었지만, 촬영까지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특히 힘들었던 건 대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는 거였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시간만 있으면 계속 중얼거렸어요. 그게 양이 은근히 돼요. 뜻을 따로 외우는 시간도 아까워서 대략적인 느낌만 파악하고 한글로 줄줄 외운 거예요. 영화하면서 이렇게 많이 외운 건 처음이었죠. 게다가 악령들과 싸우는 거니까 감정도 많이 넣어야 해서 쉬운 작업은 아니었어요. 다행히 NG가 한 번도 안났죠(웃음). ”
사제복을 입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안성기는 지난 1998년 개봉한 영화 ‘퇴마록’에서도 박신부를 연기했다. 다만 “두 역할은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보다는 실제 종교가 더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안성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퇴마록’은 완전히 다른 영화, 캐릭터예요. 그래서 그때의 경험이 안신부를 연기하는 데는 특별한 영향을 주진 않았죠. 반면 카톨릭 신자라서 쉽게 체화되는 건 있었어요. 날마다 성호도 그리고 합장도 하니까 안해본 사람과는 확실히 달랐죠. 익숙하니까. 하지만 구마에 대해서 신부님께 따로 정보를 구하지는 않았어요. 시나리오에 충실하자는 생각이었죠.”
안신부는 영화를 묵직하게 이끄는 동시에 이야기의 쉼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중간중간 용후(박서준)에게 건네는 말들이 큰 웃음을 안긴다. ‘사자’의 백미다.
“제가 좋았던 부분도 그거였죠. 단순히 긴장감으로 몰아가면서 사람을 옥죄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유머가 반복되는 게 좋았어요. ‘청년경찰’에서 보여준 것처럼 김주환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있는데 나름 억제를 많이 한 거죠. 선을 너무 넘으면 안되니까요. 촬영할 때도 신났어요. (박)서준 씨와 현장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나온 것도 많았죠(웃음).”
올해는 한국 영화가 탄생 100년을 맞는 해다. 1957년 영화 ‘황혼 열차’로 데뷔한 그는 62년 동안 한국 영화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현재는 배우들을 대표해 한국 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홍보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간 전성기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어려운 세월을 잘 보냈어요.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요. 관객수가 많아진 만큼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한 일이 됐죠. 그러면서도 작품성을 찾아가는 게 숙제라고 생각해요. 예전엔 재미와 작품성을 같이 넣은 작품이 많았는데 지금은 상업, 독립영화로 완전히 분리됐죠. 작품성과 재미가 한 영화에서 만난다면 한국 영화도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안성기는 올 하반기 저예산 영화를 연이어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차기작은 독립영화 ‘종이꽃’과 다큐멘터리 ‘반성’이다.
“‘반성’은 이정국 감독의 작품입니다. 광주(5.18)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죠. 지금 제게는 계속 영화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지금처럼 계속 좋은 영화를 할 수 있고, 현장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죠. 나 혼자 있고 싶은 게 아니라 함께하고 싶어요. 그러니 좋은 감정으로 나와 같이 있어 주세요(웃음).”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