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돌림 우려" 현장검증 안한 경찰 해명에 들끓는 비판 여론
부실한 신상공개에 현장검증 생략에 '피의자 인권' 논란 재촉발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훼손한 고유정(36)에 대해 경찰이 '조리돌림'을 우려해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며 피의자 인권 보호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 됐다. 신상공개에 이어 현장검증까지 경찰이 고유정의 인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것처럼 비춰지면서 논란은 가열되는 양상이다.
◆ "조리돌림 우려해 고유정 현장검증 안했다" 역풍 맞은 경찰
27일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 사건을 수사한 제주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은 최근 공동명의로 경찰 내부 통신망에 고유정 수사와 관련한 입장문을 게시했다.
[제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제주시 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19.06.12 leehs@newspim.com |
이들은 입장문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고유정이 허위진술로 일관하고 있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박기남 서장이 결단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조리돌림이란 과거 죄인을 사람이 많은 곳에 공개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는 처벌 방식을 뜻한다.
수사기관의 현장검증은 필수 절차가 아니다. 주로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했을 때 진술한 범행 과정을 실제 현장에서 재연해 범죄 사실을 재구성하는 절차다. 제주동부서 경찰관들이 밝힌 것처럼 고유정이 허위 진술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현장검증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글이 알려지자 경찰이 피의자인 고유정의 인권을 과잉보호 한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제주동부서 경찰관들의 파면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제주동부서 홈페이지에도 이들을 비판하는 게시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피의자 인권 과잉보호 논란은 고유정의 신상공개 당시에도 촉발된 바 있다.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는 고유정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고유정의 범행이 잔혹하고, 피해자가 입은 정도가 큰 점 등을 참작한 결과다.
그러자 신상공개 제도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며 찬반 대립이 불거졌다. 더욱이 언론 앞에서 얼굴을 가리는 고유정을 경찰이 강제로 공개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극대화됐다.
[제주=뉴스핌] 이형석 기자 =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제주시 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이날 고유정이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자 희생자 유가족이 호송차량을 막고 있다. 2019.06.12 leehs@newspim.com |
◆ "수사는 강제성이 전제" VS "'무죄 추정' 피의자 수사 신중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피의자 인권 보호 논란은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피의자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과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피의자들을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의자 인권 보호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제도들을 균형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수사기관에서 하는 수사의 전제는 국가의 강제성이 전제된 것으로, 인권 보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상공개 제도를 비롯해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피의자 인권 보호 수준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훨씬 발달된 수준"이라며 "수사기관은 수사만 열심히 하면 되고 신상공개, 현장검증 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요소 등 이외의 사항은 다른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아직 정확히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피의자 인권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신상공개와 현장검증 등도 실익을 따져서 꼭 필요할 때 신중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조건 피의자 인권을 중요시하자는 게 아니라 그동안 수사기관의 잘못된 행태를 살펴보자는 것"이라며 "그러나 신상공개 제도는 명확한 기준 없이 대중들의 호기심 충족을 위한 수단에 그치고 있고 현장검증도 경찰의 '보여주기식' 행태인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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