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23분간 검찰 작심비판…“이런 수사가 권력의 남용”
박병대 “수사기록 보면서 법관들이 겁박당한 것 같아 가슴아파”
검찰과 변호인 간 감정 격해지기도…예정됐던 서증조사 못 끝내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사법농단’ 사건으로 피고인석에 앉은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검찰의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것이고 권력의 남용”이라며 23여분간 검찰을 작심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29일 열린 오후 공판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변호인은 특히 공소장 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 위반을 지적하며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는 “이미 공소제기 절차가 위법하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백보 양보해도 검찰의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범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5.29 mironj19@newspim.com |
이어 보충 진술 기회를 얻은 양 전 대법원장은 23분 동안 검찰을 ‘작심 비판’했다.
그는 “법관 생활을 40여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봤다. 저를 찾아오는 여러 동료 법률가들도 공소장 보고 어떻게 이런 공소장이 다 있느냐고 한다”며 “이것은 법률가가 쓴 문서가 아니라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라고 운을 뗐다.
이어 “‘재판거래’를 했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실제 조사를 해보니 마땅하지 않았는지 하나를 뽑아서 재판거래로 포장을 했는데, 결국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문건 작성 지시한 것으로 끝을 내렸다”면서 “용을 그리려다 뱀도 제대로 못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의 수사나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수사기록의 1/100도 보지 못했지만 깜짝 놀라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검사의 재촉에 못 이겨 교묘한 유도신문에 영합하는 진술이 대부분인 걸 행간으로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여러 법관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당하면서 검찰 조서가 얼마나 경계해야 할 것인지 체감했을 것”이라고 우회 비판하기도 했다.
더불어 “수사기관이나 검찰은 법치주의를 보장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수사를 하고 검찰권을 행사해야 된다”면서 “어떤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하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다. 그런 수사야 말로 권력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발언 기회를 얻은 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13분간 재판에 임하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제 인생의 사회생활 전부라고 하는 32년을 오로지 법관으로 지냈고 퇴임한 지도 만 2년이 지났는데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에 휘말려 형사법정의 법대 앞에 섰다”며 “재판을 할 때든 사법행정을 할 때든 나름 최선을 다했고, 평생 자중자의하고 절제하면서 지냈다.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이어 “이번 일로 법원의 위상과 법관의 자긍심에 큰 손상을 입게 된 데도 진심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면서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많은 법관들이 때로는 겁박 당하듯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훈계와 질책을 듣는 것 같은 조서의 행간을 읽자니 참으로 억장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검찰 수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피고인들의 발언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간의 기싸움도 계속됐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소송관계인으로서 이익되는 진술을 하는 건 형사소송법상 보장돼 있으나 소송과 관계없는 건 재판부가 제지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희도 공소 유지와 입증을 위해서라도 피고인 주장에 대해서 일정부분을 반박해야 할 것 같다”고 재판부에 반박 기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두절차에서 할 부분이 아니라며 이를 일축했고, 검찰은 “왜곡된 심증을 형성할 수 있다. 반박 기회를 주지 않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은 “피고인의 모두진술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가든 상관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재판부 역시 “지금 해야 될 절차는 모두절차해서 하지 못한 증거 입증계획을 말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자 검찰은 “피고인들 주장 중 ‘법관들이 겁박이나 유도에 의해 진술했다’는 등 증거관계를 주장하는 게 있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허용된 시간 내에 입증계획에 대해 말하겠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이 “여기는 신성한 법정이다. 소송 당사자는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에 복종해야 한다”며 “재판장님이 알아들을 만큼 합리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검사가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이런 행위가 처벌 받을 수 있음을 고지해달라”고 격앙된 상태로 항의하자, 결국 재판부가 나서 상황을 정리하고 10분간 휴정을 명했다.
당초 재판부는 오전에 모두진술을 마치고 오후에는 서증조사로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고 모두절차만 7시간여 동안 진행되면서, 예정됐던 서증조사 진도는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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