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을 쳐라" 2004년 데자뷔에 정치권 초긴장
박범계 "숙의 필요", 조국 "우려 경청돼야" 진화
靑-檢 정면충돌 구도에 양측 모두 부담 느낀 듯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2004년 데자뷔’로 인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자신감일까. 문무일 검찰총장이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공개 반발한 것을 두고 범여권이 예상보다 온건한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입법권자인 국회가 결정할 일에 당사자인 검찰이 왜 나서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일부 관측되나 대체로 문 총창의 지적을 일견 수긍하면서 검찰을 달래는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사법개혁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은데다가 이미 공이 국회로 넘어간 상황인 만큼 문 총장의 발언이 결국 조직 내부 달래기에 그칠 것이란 판단에서 무리한 대응을 삼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뉴스핌] 김학선 기자 = 문무일 검찰총장이 해외 순방 일정을 예정보다 닷새 앞당겨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조기 귀국하고 있다. 문 총장은 지난 1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밝혔다. 2019.05.04 yooksa@newspim.com |
◆ ‘문무일의 난’..2004년 데자뷔에 정치권 긴장
문 총장은 지난 1일 해외 출장 중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형사사법 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되어야 하지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들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국회의 법안 처리 절차에 대해 반발했다.
4일 귀국길에도 문 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재차 "수사권 조정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의 발언에 정치권은 즉각 2004년 송광수 전 검찰총장의 발언을 떠올렸다. 당시 송 전 총장은 참여정부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움직임에 "먼저 내 목을 치라"며 맞섰다.
청와대와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검찰 개혁을 지상과제로 삼아 온 문재인 정부가 어떤 카드를 꺼내들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 여권의 반응은 대체로 신중한 분위기다. 문 총장을 당장 끌어내리기보다는 여론전을 통해 차근차근 국민과 검찰을 설득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kilroy023@newspim.com |
공식적인 첫 반응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놨다. 박 의원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 총장을 향해 "2000여 검사들을 이끄시는 노고와 애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시작해 "검사들이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고 부정부패와 범죄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점을 평가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며 "모두가 편견 없이 오로지 국민만 보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며 검찰을 달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지난 3일 "패스트트랙은 국회로 넘어간 상황이고, 그 안에서 여야가 치열한 논의와 협상을 통해 만들어갈 것"이라며 "청와대가 거기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 여론전서 밀리는 檢..문 총장 발언은 내부달래기?
여권이 이처럼 유연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정권 2년차에 검찰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으로 국민 눈에 비춰지는 것이 결국 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004년 송 전 총장의 반발 이후 2005년에는 평검사들이 집단 항명하면서 당시 형사소송법 개정은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여권 인사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단 정면 충돌을 피했을 수 있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와 지금은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다는 현 정부의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통령 지지율이 당시와 큰 차이가 있고 특히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다는 점은 청와대 입장에서 '믿을 구석'이다.
각 종 여론조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는 의견은 60%에 육박하는 반면 반대 의견은 30% 초반에 그치는 상황이다.
게다가 참여정부 시절에는 집권 세력 단독으로 검찰 개혁을 밀어붙이다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여야 4당을 중심으로 국회가 추진하고 있어 검찰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논란이 일자, 문 총장이 해외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했는데 문 총장 역시 정권과의 정면 대결로 비춰지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홍 전 대표는 4일 페이스북에 "다른 정권과는 달리 문 정권은 검찰을 철저히 이용해 먹고 이제는 버리려 한다"며 "최근 (문무일)검찰 총장이 수사권 조정에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홍 전 대표는 “최근 검찰의 반발은 참으로 측은하다. 문 정권은 철저하게 준비된 좌파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처럼 얼치기 좌파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검찰이 헤게모니를 쥐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kilroy023@newspim.com |
◆ 입 연 조국 “문 총장의 우려 경청돼야” 여유 드러내
우상호 민주당 의원 역시 6일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일부 검찰 소속원들이 지금 들끓고 있지 않은가"라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부 자기 소속 구성원들의 불만을 (문 총장이) 일부 표출해 줘서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저것을 반발 혹은 저항 이렇게 보는 건 과하다고 본다"며 "다음에 법안이 공식적으로 다시 심사될 때, 반영해 달라는 의견으로 해석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이날 조국 민정수석의 입을 통해 나왔는데 역시나 검찰을 달래면서 여론을 끌어안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 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장안이 법제화되면 경찰에게 ‘1차 수사종결권’이 부여되므로 경찰권력이 비대화 된다는 우려가 있다”며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에 대한 검사의 사후적 통제방안은 마련돼 있지만, 이 우려는 깔끔히 해소돼야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우려 역시 경청돼야 한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공수처에 대한 국민지지는 75%를 넘는 것에 비해, 문 총장도 공수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국회에서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며 “수사권조정에 대한 지지는 58% 정도다”라고 소개했다.
조 수석은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입법과정에서 일정한 수정·보완이 있을 것”이라며 “검찰도 경찰도 입법절차에서 자신의 입장을 재차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주 귀국한 문 총장은 오는 7일 업무에 복귀하는데, 늦어도 금주 내로 추가 입장을 발표할 전망이다. 범여권의 기대대로 문 총장이 반 발짝 후퇴하며 몸을 낮출지, 아니면 재차 총대를 메고 검찰의 입장을 강변할지 주목된다.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