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대지미술가 낸시 홀트(1938~2014)가 40여년 전 유타주 그레이트 베이슨(Great Basin) 사막에 설치했던 장대한 조각이 오는 5월 보존작업에 들어간다.
낸시 홀트는 1970년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의 40에이커 부지에 ‘태양의 터널(Sun Tunnels)’이라는 대지미술을 시도하기로 결정하고, 1973년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1976년에 설치를 마쳤다. 지름 282cm, 길이 551cm의 거대한 철근-콘크리이트 원기둥 4개로 이뤄진 이 대지미술은 황량한 사막에서 ‘태양과 호흡하는 조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예술팬들이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으로 몰려들었다.
대지미술가 낸시 홀트가 40년 전 유타주 사막에 세운 ‘태양의 터널’. 지난해 뉴욕 디아아트센터가 작품 관리권을 넘겨받아 5월부터 보수를 진행한다. [사진=유튜브 zczfilms채널 캡처] |
낸시 홀트는 겨울과 여름에는 떠오르는 태양, 지는 석양의 각도가 원통과 완벽히 일치하도록 설계했고, 각 조각 상단에는 작은 구멍들을 뚫어 밤 하늘의 염소자리를 표현했다. 이에 일출과 석양 무렵에는 작품 사이로 깃드는 태양 빛을 보기 위해 애호가들이 사막을 찾곤 했다. 지금도 유타주는 이 장대한 조각을 주를 대표하는 조형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세워진지 40년을 훌쩍 넘어서며 여러 문제점이 노정됐다. 작품이 미국 서부 사막지대의 극한 상황에 노출되면서 균열 및 침식이 발생했고,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또한 사막 한가운데 방치되다시피 해 적잖이 훼손된 상태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의 야외 조형물을 손보는 작업이 간단치 않은 데다, 비용도 많이 소요돼 계속 미뤄져왔다. 이에 뉴욕의 비영리 미술기관인 디아(Dia)아트센터가 마침내 팔을 걷어부쳤다.
디아아트센터는 작가 커플인 낸시 홀트와 그의 남편 로버트 스미스슨(1938~1973)을 기리는 재단인 홀트-스미스슨 파운데이션(Holt-Smithson Foundation)과 손잡고, 오는 5월부터 ‘태양의 터널’의 보수작업에 돌입한다. 지난해 3월 ‘태양의 터널’의 저작권을 재단으로부터 인수받은 디아아트센터는 앞으로 이 작품의 보수와 유지관리 등을 맡게 된다. 디아아트센터는 2018년 디아 첼시 미술관에서 낸시 홀트의 유작전을 개최하며, 미국의 대지미술운동에 큰 획을 그은 작가를 재조명하기도 했다.
제시카 모건 디아아트센터 관장은 "우리가 곧 착수하게 될 ‘태양의 터널’ 보수작업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되는 대지미술을 미래세대를 위해 제대로 보존하고, 그 예술성을 이어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대부분의 야외미술과 대지미술들은 독특하고 복잡한 보존문제를 안고 있으며, 예술가의 의도를 깊이 이해한 가운데 이뤄져야 하는 것이 과제”라고 밝혔다.
지구촌에서 시도되는 스케일 큰 대지미술과 설치미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디아아트센터는 마이클 하이저, 월터 드 마리아 등 1970~90년대를 풍미했던 대지미술가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해왔다. 리차드 롱, 데니스 오펜하임, 크리스토 등 일군의 대지미술가들은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에 반발해 사막과 해변, 초원 등 광활한 야외에서 자연물을 소재로 방대한 스케일의 작업을 펼쳐왔다.
디아아트센터는 지난 1999년에는 대지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로버트 스미스슨이 1970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의 그레이트솔트호에 장장 457m 길이로 설치한 ‘Spiral Jetty(나선형의 방파제, 스미스슨의 대표작이다)’의 관리권도 인수한 바 있다. 로버트 스미스슨은 1960년대말 미국 랜드아트(Land Art)운동의 선봉을 달리며 활발히 활동하던 중 1973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대지예술가다.
이번 디아아트센터의 대지미술 보존사업은 지구촌 곳곳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거나 훼손된 야외미술과 대지미술의 보수및 관리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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