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텐코 사장 20여년 연임한 '처세 달인'...부총리 등 겸직
한국과 인연 깊은 대표적 친한파..."YS를 큰 형님으로 모신다"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소련 해체 직후부터 무려 4반세기 동안 타스통신 사장을 지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우리와 여러 가지로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친한 인사로, 한·러친선협회 회장을 오랜 기간 맡기도 했다. 2010년에는 명예 서울시민증을 받을 정도로 한국과 친숙하다.
타스 통신 사장직을 20년 이상 유지한 '처세의 달인' 이그나텐코가 협력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09) [사진=뉴스핌DB] |
◆옐친 이후 20여년간 타스통신 사장 연임...공보 부총리·상원의원 등도 겸직
그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이력을 보면 ‘처세의 달인’이라고 할만하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발탁된 이그나텐코는 크렘린 명대변인으로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가 몰락하자 재빨리 옐친 호로 갈아타고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타스통신 사장 직을 꿰찼다.
옐친에 이어 푸틴, 메드베데프, 다시 푸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20년 이상 타스통신 사장 자리를 지키는 기록을 남겼다. 타스통신의 사주나 마찬가지의 존재감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입신양명에는 남다른 사교술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위시해 어느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유연한 매너가 한몫 했다고 생각된다.
타스통신 사장으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옐친 대통령의 언론담당 수석보좌관, 공보 담당 부총리(1995-1997)를 겸임하는가 하면 푸틴 대통령에 의해서도 상원의원 겸직의 혜택을 입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이그나텐코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요직을 재임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필자는 모스크바 특파원 재임시 타스통신 본사 건물 내에 사무실을 두었다. 당시 타스통신 본사건물에 사무실을 둔 외국특파원은 필자가 유일했다. 그런 연유로 이그나텐코 사장은 때때로 필자를 집무실로 불러 불편한 점은 없는 지 물으며 각별히 챙겨주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을 얘기할 때는 신바람이 나는 듯했다. 그는 여러 번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에겐 한국에 두 분의 형님이 계신다. 그 분들에게는 혈육의 정을 느낄 정도다.” 누구냐고 물으니 ‘큰 형님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작은 형님으로 현소환 연합통신 사장’이라고 했다. 그의 진지한 태도로 보아 상당히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94년 6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이 크렘린궁 영빈관에서 특파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사진=뉴스핌DB] |
◆한국과 인연 강조..."YS 큰 형님으로 모신다. 한·소 수교에 중요 역할"
이그나텐코는 한·소 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자신도 배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비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력 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야’(신시대)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던 1988년, 서울올림픽 취재단장으로 서울에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만났는데 손금을 볼 줄 안다며 YS의 손금을 들여다보고는 “귀하는 조만간 소련에 갈 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YS의 소련방문 의사를 넌지시 타진했던 거라고 했다.
이그나텐코의 말대로 89년 6월 김영삼 총재는 소련 최대의 싱크탱크인 IMEMO(국제관계 및 세계경제연구소) 초청 형식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잠깐이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도 만남을 가졌다. 소련 대통령이 외국의 야당 지도자는 만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깬 것이어서 이례적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YS와 각별한 친교를 맺게 됐다는 것이다. 이그나텐코는 타스통신 부사장을 잠깐 지낸 후 고르바초프의 부름을 받아 크렘린 대변인이 되었고 소련이 해체되자 옐친에 의해 타스 사장으로 발탁된다. 타스 사장 재임중 매년 한 두 차례 서울을 방문한 이그나텐코는 한국 파트너 격인 현소환 연합뉴스 사장과도 만남을 가졌으며 인간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이그나텐코에 대해 타스통신 내부에서는 개혁·개방주의자라기 보다는 수정주의자에 가깝다고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다. 역대 권력자들에게 연달아 중용되는 모습이 변신의 달인으로 보여 못마땅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 교민들과 인사하는 가운데 특파원단 대표 자격으로 필자와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스핌DB] |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