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상장사 등기이사 임명, 과반수 찬성 일반결의
대한항공, 외환위기 때 '2/3 찬성' 특별결의로 바꿔
항공법상, 외국인은 항공업 할 수 없어
[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재선임에 실패한 것은 다른 상장사보다 까다로운 이사선임 요건 때문이다. 대부분 상장사들이 이사선임 요건을 일반결의사항(출석주주의 과반수 찬성)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한항공은 특별결의사항(출석주주의 2/3 찬성)으로 분류해 놓았다. 이것이 조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스핌DB] |
대한항공은 27일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올렸지만 투표결과 부결됐다. 전체 주주의 73.84%가 참석했고, 이 중 64.1%가 찬성했다. 나머지 35.9%는 반대표를 던졌다.
만약 대다수 상장사처럼 대한항공의 이사선임 요건도 일반결의사항이었다면 조 회장의 재선임은 통과됐을 것이다. 일반결의사항은 참석주주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정관에는 이사선임 요건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분류해 놓았다. 따라서 참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등기이사로 선임될 수 있는 것이다. 조 회장은 약 2.5%가 부족해 등기이사 재선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이 까다로운 선임 요건으로 인해 재선임에 실패하자 대한항공이 왜 이사선임 요건을 까다롭게 해 놓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는 20년전인 1999년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1999년은 조 회장이 선친인 고(故)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해다.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경영권 방어 위해 특별결의로 바꿔
당시 외환위기 등으로 외국계 자본에 대한 개방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대한항공은 경영권 방어와 안정을 위해 이사선임 요건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변경했다. 이사선임 요건을 까다롭게 해 외부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이 흔들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목적이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과민반응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애당초 항공법상 외국인이나 법인 또는 단체는 국내 항공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대한항공의 정관변경이 국내외를 떠나 기존 경영진 이외의 외부세력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고 관련업계에서는 해석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외국인이나 법인이 항공사 경영을 하지 못한다고는 해도, 이사선임을 통해 경영권을 흔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이를 방지하기 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20년간은 큰 문제가 없었다. 이사 선임 규정이 까다롭다고는 해도 국민연금이 그동안 든든한 우호 지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조 회장의 등기이사 연임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조 회장 일가들의 갑질과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들은 대한항공 총수일가에 등을 돌렸다. 상황이 이러자 국민연금도 조 회장 이사 재선임에 반대했고, 플로리다연금, 캐나다연금 등도 조 회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조 회장과 대한항공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선택한, 그리고 20년동안 조 회장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켜줬던 '까다로운 이사 선임 요건'이 부메랑이 돼 조 회장을 CEO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