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의 일갈
박근혜 통해 정치 입문…탄핵 때 자진 탈당
"자율가치 기반으로 지지세력 재구축해야"
[편집자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폭망’한 한국 보수가 환골탈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규정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4%에서 30%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회만 있으면 수구 보수로 회귀하려는 꿈틀거림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새도 좌우 날개가 균형이 맞아야 잘 날 수 있다’는 오래된 정치 격언처럼 보수가 건강하게 재편돼야 한국 정치가 발전한다. 뉴스핌은 새로운 보수가 가야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 여의도 안팎에서 보수 정치를 고민하며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신보수의 길을 탐색해봤다.
[서울=뉴스핌] 이지현 김승현 기자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비대위 회의 그동안 사표 쓸 각오하고 들어가서 발언했습니다."
1987년생, 우리 나이로 만 32세인 정현호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의 말이다. 한국당 비대위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얼버무리는 논란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낸 정 전 위원을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났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정 전 위원의 발언이 어디로 튈지 몰라 늘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황교안 당시 당대표 후보의 출마 자격이 없다고 공개석상에서 일갈한 것도 그였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청년 활동가들은 운신의 폭이 좁다. 특히 보수 정당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든 보수 정치인들이 청년을 강조하지만 실제 그들이 뛰어놀 운동장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좀 더 배워야 한다며 ‘아직 어린애’ 취급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 전 위원은 꾸준히, 그리고 단호하게 한국당에 변화를 촉구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많은 변화가 있긴 했지만, 아직도 바꿀 것이 많다. 7개월 간 보수 정당의 변화 중심에 서 있던 ‘청년 정치인’ 정 전 위원은 앞으로 우리 보수가 인물 중심의 정치문화, 권력 기회 추구형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야 보수가 힘을 얻고 지속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박근혜 키즈’였지만 공정성 위배한 朴 비판 “할 말은 해야 한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정현호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 2019.03.06 yooksa@newspim.com |
정 전 위원이 정치계에 첫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12년 대선 때였다.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청년위원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 전 위원은 전국대학총학생회모임 1기 집행의장을 지내면서 이명박 정부와 반값등록금 협상을 했고, 국가장학금 제도의 틀을 만든 경험이 있다.
이후 박근혜 당시 후보가 국가장학금 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선거를 도왔다. 그 인연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위원으로 활동했고, 새누리당 총선공약단 청년공약 간사를 맡았다. ‘박근혜 키즈’로 봐도 무방한 경력이지만, 지난 2016년 새누리당 공천 파동 당시 그는 박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때 당 청년혁신위원장이었는데, 유일하게 청년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공천을 사적으로 한 것이 당을 위기로 빠뜨릴 것이고, 공정성이 위배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분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 생각에는 새누리당이 분명 부패했고 이대로는 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새누리당 구조 안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싹이 트기도 전에 얼어버리는 '영하 40도'와 같은 분위기였다. 블록체인 정당 같은 것을 시도한다고 했을 때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걸 하면 지지율이 올라가는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정 전 위원은 2016년 11월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간 경험을 살려 정치스타트업인 정책벤처 사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2년 만에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왔다. 할 말을 했던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인사들의 추천으로 비대위원 제안을 받았다.
확실히 변화가 필요한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사표를 품고 비대위 회의에서 할 말은 다 했다. 지난해 국회의원 외유성 출장이 화두가 됐을 때 정 전 위원은 비대위 회의에서 "한국당이 앞장 서 상세한 윤리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논란에는 다수의 한국당 의원들이 연관돼 있었다.
최근에도 황교안 후보 출마 자격이 논란이 됐을 때 "청년 당원들은 당헌·당규 내용에 따라 자유로운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데 기성 정치인과 유력자,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는 당헌·당규가 왜 이렇게 관대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응은 싸늘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지금 꼭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느냐"며 막으려 했다. 그래도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큰 힘이 됐다.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은 사전에 김 위원장과 상의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김 위원장에게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이 구부러지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 다 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발언하기 전 힌트 하나만 달라고 하더라(웃음)."
◆ “한국 보수, 인물 중심·권력추구형 정치 버려야 다시 태어난다”
[고양=뉴스핌] 김학선 기자 = 지난달 2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후보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2019.02.27 yooksa@newspim.com |
정 전 위원이 기성 정치권에서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정치,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보수가 가야할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은 헌법정신이 부재했고, 그로 인해 문제가 터져 책임을 다같이 지게 됐다. 그 때부터 어떤 정치인을 돕는 정치는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믿는 생각과 가치에 충실해 그 뜻이 맞으면 연대해서 정치를 하는 것, 그것을 배웠다. 기성세대 밑에 종속적으로 일을 하며 권력을 얻고 싶지 않았다"고 힘줘 말했다.
여전히 한국당은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 갈등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가치에 따른 계파가 아닌, 권력자와 얼마나 친한지가 아직도 계파의 중심에 있다. 인물 중심의 정치, 권력 추구형 정치다.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여전히 친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이제는 친황(친황교안) 논란까지 나온다. 그는 이를 버리지 못하면 한국당은 결국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은 "보수정당의 변화를 저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인물 중심, 계파 중심의 정치문화, 그리고 권력기회 추구형 문화가 강하다는 점이다.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를 하다보니 보수에는 철학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문화가 그렇다 보니 가치에 충실하려는 사람은 현재 권력구조 속에서는 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 보수정당이 생존하려면 시대정신을 내세워 이에 동의하는 세력을 다시 새롭게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보수 정당이 자랑스러워할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다. 이 헌법가치를 대한민국에 뿌리 내리는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자긍심을 찾는다. 그렇다면 헌법가치를 가장 잘 지키는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과거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정부는 복지 효율성이 떨어졌을 때 스스로 '보수 혁명'을 외쳤다. 지금 신보수가 나아갈 길은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새로운 원칙'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전 위원은 최근 5.18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의원들 징계에 대해서도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여권에서도 손혜원 의원투기 의혹 등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 쪽 역시 별다른 자정 노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여당도 안 그러는데 왜 우리는 그래야 하냐'는 논리가 꽤 크게 작용하더라. 우리만 강한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논리다. 하지만 새로운 원칙을 쌓아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율 가치 바탕으로 정책 만들어 설득해야…청년 위한 정치공간 여전히 절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정현호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 2019.03.06 yooksa@newspim.com |
헌법가치라는 말은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지지기반을 만들 방법을 묻자 정 전 위원은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이 본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진보 성향이라고 생각하더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는 방송을 진보 정당에서는 먹방 규제다 뭐다 해서 제한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오히려 방송의 자유를 극대화하되 최소한의 위험 요소만 규제하는 것이 보수 정당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아 그럼 저는 보수네요?'라고 되묻더라. 보수정당이 추구하는 자율의 가치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설득해야 지지기반이 개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은 이런 가치를 고민하고 실현하려는 사람이 기성 정치세대 안에는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만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대체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청년세대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활동 공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비대위에서도 가장 중시한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이번에 당의 중요한 위원회나 의사결정위원회에 청년이 무조건 정수의 20%는 포함되도록 하는 당헌을 마련했다"면서 "4.3 재보궐 선거부터 적용돼서 공천관리위원 6명 중 한명은 청년이 들어간다. 사실 인구비례로 20~39세 청년 세대 인구 비율로 하면 33%는 돼야 하는데 일단 실현 가능한 범위인 20%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면 청년 비중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닌다.
정 전 위원은 “지금까지는 기성 정치인들이 굳건하게 쌓아 온 정치 문화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원칙에 기반한 발걸음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젊은 세대는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그 탑을 공들여 쌓다 보면 청년들이 역할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한다. 그 때를 위해 부단히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