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 훈련 거부로 기소…“타인 생명 빼앗을 수 없다”
법원 “신념 형성 과정·군사훈련 거부 과정 충분히 소명”
非여호와의증인 신도로는 첫 무죄 선고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종교가 아닌 자신의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20대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여호와의증인 신도 중 병역 거부한 사람이 지난해 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으나, 비(非) 신도에 대한 무죄 선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5단독 이재은 판사는 최근 예비군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28)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이나 신념에 반하여 군에 입대하게 된 과정, 그 후 다시 양심에 반하는 군사훈련을 거부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면서 “A씨의 예비군 훈련 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인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이형석 기자 leehs@ |
A씨는 2013년 제대 후 지난해까지 10여 차례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법상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않은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고 있다.
A씨는 “훈련에 불참한 것은 사실이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판사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으로 인해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 A씨는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이라는 점과 이는 전쟁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A씨는 군 입대 자체를 거부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양심과 타협해 2011년 입대했다. 하지만 A씨는 신병 훈련 당시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과연 적에게 총을 쏠 수 있을까 자문한 뒤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하고, 이는 양심에 반하는 일일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큰 해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다. 이후 A씨는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회관관리병으로 자원 근무했다.
A씨는 제대 후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더 이상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예비군 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 위헌심판 선고일인 지난해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선고 결과에 만족해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군입대를 하지 않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형사 처벌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018.06.28 yooksa@newspim.com |
지난해 11월 1일 대법 전원합의체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승헌 씨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하급심에서는 줄줄이 무죄 선고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판결 당시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하고, 이러한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그 신념이 사람의 내면 깊이 자리 잡아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에서 ‘깊고’ △반드시 고정불변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은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서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확고하며’ △거짓이 없고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다는 뜻에서 ‘진실해야’ 한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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