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첫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시작과 끝의 화두는 '박근혜 전 대통령'
5.18 공청회 발언 및 전당대회 계기로 태극기 부대 실력행사 늘어
"콘크리트 보수층, 끌어안아야 하나 거리둬야 하나"…당·후보들 고민
[서울=뉴스핌] 이지현 기자 =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의 첫 합동연설회가 있었던 지난 14일. 연설회 시작과 끝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 지지자들 한명 한명과 악수를 나눈 황교안 후보를 향해 일부 당원들은 "어디서 박근혜 대통령을 욕보이느냐"며 험한 말을 던졌다.
행사의 마지막 즈음 오세훈 후보가 연단에 올라 연설에 나섰다.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오 후보의 말에 행사장은 고성과 야유로 가득찼다.
오 후보가 이어 "그 분을 버리자, 용도 폐기하자는 뜻이 절대 아니다"라며 말을 이어갔지만 고성에 묻혀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가 있던 지난 14일, 행사 시작 전 김진태 의원 지지자들이 행사장 앞에서 김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2019.02.15 jhlee@newspim.com |
◆ '배박' 황교안에 청중들 야유, 김진태 향해선 "당을 지킨 애국자"
아직도 한국당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모두 입을 모아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세훈 후보가 전당대회 보이콧에 나섰다가 이를 철회하면서 "당이 우경화 된다는 당원들의 우려가 있다"고 한 것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향해 '배신자'라고 지탄하는 것만 봐도 당 내 극단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첫 연설회에서 가장 많은 응원을 얻은 사람은 김진태 후보였다. 이날 오전 윤리위 징계 유예가 확정된 뒤 연설회에 참석한 김 후보를 향해 지지자들은 '김진태 의원을 건들지 말라!'는 피켓을 높이 들어보였다.
김 후보를 지지하는 한 60대 여성은 "황교안은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고, 오세훈은 당을 배신하고 나갔다 오지 않았냐"며 "당을 지킨 애국자는 김진태 후보 하나 뿐"이라고 역설했다.
비교적 보수의 색채가 약한 충청·호남지역에서의 합동연설회가 이 정도면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TK)지역의 분위기는 불 보듯 뻔하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지만원씨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기계회관 앞에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지자들과 함께 김 의원에 대한 당 윤리위 제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2019.02.13 kilroy023@newspim.com |
◆ "콘크리트 보수층, 끌어안아야 하나 거리둬야 하나"…당·후보들 고민
한국당의 '극우'적 성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5.18 공청회 논란 이후 윤리위에 제소된 김진태·김순례·이종명 후보를 보호해야 한다며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국회에 무단으로 들어와 집회를 벌이는 일까지 있었다.
그동안 한정된 지역에서 주말마다 집회만 이어가던 극우 지지세력들이 최근의 한국당 지지율 상승 및 전당대회를 계기로 '실력 행사'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들이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당과 전당대회 후보들도 이들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다는데 있다. 특히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분열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려면 이들 콘크리트 보수층을 끌어안아야 하는 것도 맞다.
전당대회 후보들 입장에서도 극우적 성향을 띠는 이들 당원들과 TK지역민들의 표심을 잡아야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일단 황교안 후보는 극우세력과 중도세력의 중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TK등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당내 분위기가 자꾸 우측으로 치우칠수록 황 후보 역시 안정적인 지지층을 계속 가져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탄핵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선을 긋거나, 확실하게 극우층을 포섭할 전략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부천=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황교안‧오세훈‧김진태 후보가 15일 오후 경기도 부천 OBS경인TV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TV토론회를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2.15 |
'우경화'를 우려하며 극우세력과 전면대결을 시사한 오세훈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과 중도층으로부터 확실한 표심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오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선거를 치를 전망이다.
물론 당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나온다. 합동연설회에서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가 "김진태, 김진태 외치는 사람들 김진태 데리고 우리당을 나가달라"면서 "여긴 대한애국당이 아니다. 이는 우리 당을 살리는게 아니라 망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한 한국당 관계자도 "당의 절대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당이 점점 우측으로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맞다"면서 "당과 후보들 입장에서도 이들을 끌어안아야 할지, 거리를 둬야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