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김지은 씨, 2018년 3월 5일 최초 폭로
1심 “위력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무죄 선고
2심 “도지사-비서 관계 악용…죄질 매우 불량”
안희정, 징역 3년6월 법정구속…남부구치소 수감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저에게 안 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사였고, ‘지사님’이었다.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기에, 저는 늘 그의 뜻을 수긍하고 그의 기분을 맞추고 표정 하나 일그러진 것까지 다 맞춰야 하는 수행 비서라 아무 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 제가 원한 관계가 아니었다.”
지난해 3월 5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수차례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34) 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폭로 이후 11개월이 지났다.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1일 오후 피감독자간음 및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이날 판결로 안 전 지사는 곧바로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총 10개 공소사실 중 9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도지사와 비서 관계라는 특성 때문에 피고인 지시에 순종하고 내부 사정을 드러낼 수 없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것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저하게 침해했고, 범행의 횟수도 많아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 “그럼에도 피고인은 당심까지 사회적 책임 외 법적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면서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받고 호송차에 탑승하고 있다. 2019.02.01 pangbin@newspim.com |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안 전 지사는 김 씨의 ‘미투’ 폭로 다음날인 지난해 3월 6일 곧바로 지사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폭로 사흘 뒤인 8일 충남도청에서 성폭행 의혹에 대한 해명 및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2시간 전 갑작스레 취소하고 “거듭 사죄드린다.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달라.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그 다음날인 9일. 안 전 지사는 서울서부지검 포토라인에 섰다. 안 전 지사는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 잘못했다”라며 “저로 인해 상처 입으셨을 많은 국민분들께, 또 도민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리고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두 번째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했고, 안 전 지사는 같은 달 19일 두 번째 검찰조사를 받았다. 안 전 지사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 쪽에서) 그게 아니라고 하신다. 사과드린다”며 혐의를 우회적으로 부인했다.
검찰은 3월 23일 형법상 피감독자간음 등 혐의로 안 전 지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 자료와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춰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지금 단계에서는 구속하는 것이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이후 영장을 재청구했으나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해 다퉈 볼 여지가 있다”며 재차 기각했다.
검찰은 같은 해 4월 11일 안 전 지사를 피감독자간음·강제추행 및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다만 추가 피해 폭로에 대한 혐의는 불기소 처분했다.
6월 15일 1차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안 전 지사의 1심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검찰 측은 김 씨가 사생활 공개를 원치 않고 2차 피해도 우려된다며 전 재판 비공개 진행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전면 비공개는 어렵다”면서 심리 대부분을 공개로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주원 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김 씨가 안 전 지사를 이성으로서 좋아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씨는 1심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측 증인들이 ‘마누라비서’라는 처음 들어보는 별명까지 붙여 사건을 불륜으로 몰아가고 본질을 흩뜨리려 한다”며 “저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위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며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2.01 pangbin@newspim.com |
1심 판결 이후 논란이 일파만파 커져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의식한 듯 1심과는 달리 증인신문과 피고인 신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검찰 측 증거와 심리 내용에 피해자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안 전 지사는 5번의 항소심 재판 동안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나 성폭력은 별개의 문제”라며 지속적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지난달 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도 “대한민국의 한 정치인으로서 송구하다”면서도 “고소인(김지은 씨)의 주장과 그 마음을 존중하고 위로해드리고 싶지만 제가 겪은 경험과는 다르다”고 호소한 바 있다.
피해자 김 씨는 항소심에서 1심 무죄 판결 이후 괴로웠던 심경을 밝혔다. 김 씨는 “1심이 끝나고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면서 “성실히 살아왔던 제 인생은 모두가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쓰였고, 제 성실함은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1개월의 고통이 너무나 커 누가 제게 미투를 상담한다면 선뜻 권유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의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이 땅에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재판부에 엄벌을 부탁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사실 10개 중 9개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안 전 지사는 법정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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