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금융관료,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 출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이정표 제시 위한 작업"
경제위기는 진행형…한반도 '대물류의 장'에서 해법 찾아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계급장 떼고 '토론'
[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현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이 고대사 연구가로 변신했다.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한 책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를 발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30여 년간 금융실명제, 외환위기, 저축은행 부도 사태 등 경제위기 때마다 각종 현안을 도맡아 처리하며 '대책반장'이란 별명을 얻은 정통 경제관료다. 개각설이 나돌 때마다 어김없이 유력한 경제사령탑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이 때문인지 김 전 위원장의 고대사 연구, 한민족 DNA 찾기는 낯설기까지 하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서울 서대문구 KT&G 서대문타워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빈 기자] |
◆ 한민족 DNA 추적은 미래에 관한 얘기
하지만 그의 '한민족 DNA 추적'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은 월간ANDA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한민족 DNA를 찾는 내 목표는 과거가 아닌 미래 얘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대사, 유라시아 역사에서 한민족의 뿌리를 찾고, 이를 토대로 세계 경제,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찾는다는 얘기다. 몽골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유럽 대평원까지 10년간 50차례 5만km에 이르는 그의 현장답사와 집요한 추적의 기록이 단순한 고대 역사서로 읽히지 않는다.
- 정통 경제관료인데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을 굉장히 부러워했다. 원래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려고 했지. 훨씬 재밌잖아(웃음). 부모님 권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대학 졸업 후 슐리만처럼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에서 1년 동안 근무하다가 주재실업이란 회사를 차렸다. 슐리만은 암스테르담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큰돈을 벌어들인 뒤 트로이 유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 때 회사는 망하고 우연치 않게 공무원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 왜 ‘한민족 DNA’를 찾게 됐는지?
“1960년 이후 60년 동안 세계 GDP는 7.5배 증가했지만 우리나라 GDP는 40배 증가했다. 우리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로 성장한 케이스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는 이걸 기적이라고 한다. 인력, 기술, 자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 기적이 왜 일어났는가를 찾아가는 여정이 내 인생의 여정이다. 첫 번째가 승부처를 해외에 둔 전략이고, 더 중요한 마지막 열쇠가 한국인, 한민족 DNA다. 유전자에서 기적의 비밀을 찾은 거다.”
- 한민족 DNA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비밀을 찾은 건가?
“한국인의 특징은 끈질긴 생존 본능, 승부사 기질, 강한 집단의지, 개척자의 정신 4가지로 요약된다. 이 기질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냐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500년 동안 유라시아 대초원(연해주부터 만주,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동유럽,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동서 8000km)에서 세계사를 호령한 기마민족, 초원제국 전사들과 DNA가 똑같다. 책에서 계수로, 유전학적으로 증명을 했다. 기마민족의 오리진(기원)이 어디냐를 밝혀낸 거다. 북방 기마민족의 오리진이 바로 한민족이다.”
- 한민족이 기마민족의 기원이라는 근거는?
“단재 신채호 선생은 흉노는 우리나라와 동족이라고도 하고 고조선의 속민이라고도 했다. 중국 사서에 보면 고조선과 흉노를 같이 본다. 흉노의 무덤, 유물, 생활관습, 언어 이런 것들이 우리와 굉장히 유사점이 많다.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누구냐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고구려의 후예다. 고구려 후예 중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동생이 대하발인데 칭기즈칸은 대하발의 19세손이다. 책에 나오는 얘기다. 누르하치(후금)도 역사책에 발해왕의 후손이라고 얘기한다. 이게 족보다. 시대에 따라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으로 불렸던 기마민족은 수많은 유적·유물이나 사서의 기록과 문화·언어·관습에서 우리하고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 기원이 고조선이다.”
◆ “북방 기마민족의 기원이 바로 한민족이다”
-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사비로 발품을 팔아 현장에서 하나하나 확인한 이유는 우리의 저력,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한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세계 경제는 굉장히 어렵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세계 경제의 진단과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제 침체는 ‘계속되는 위기(on-going crisis)’로 이어지고 있다. 1929년의 대공황은 수요 부족이라는 심플한 원인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전개되는 글로벌 경제위기는 과부채 문제(과잉 유동성)에 기인한다. 1970년대 말부터 40년 가까이 대규모 유동성을 동원해서 성장했는데 그 결과 가계, 기업, 정부, 금융회사 모두 빚더미에 앉았다. 그게 터진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초대형 유동성 공급으로 외형상 2008년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는 잠재 리스크가 누증되고 불안정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부채로 인해 생긴 위기를 또 부채로 막은 거다. 과부채 문제가 해소되기 전까지 불안 국면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분쟁, 유럽 리스크 등의 암초가 터지면 글로벌 침체로 굉장히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 한국 경제의 어려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는 건가?
“대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과 함께 대내적으로 한국 경제의 암초를 다섯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우선 과도한 부채, 특히 가계부채가 문제다. 또한 산업 경쟁력 상실인데 우리 1등 산업 반도체,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등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과 고용절벽, 경제 양극화와 갈등도 한국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 세계 경제 어려우니 우리도...숨고르기할 때
-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세계 경제가 나쁘면 한국은 무조건 나쁘게 돼 있다. 세계는 지금 위기다. 그러면 한국 경제도 위기다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경제가 나쁜 것이 정책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첫째 요인은 해외다. 세계가 어려우면 당연히 우리도 어렵다. 국내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1km를 100m 달리기하듯이 뛰어왔기 때문이다.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때이고, 숨고르기를 안 하고 또 뛸 수는 없다. 안에는 숨고르기를 하는 상황이고, 밖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 한국 경제 위기와 관련, 소득주도 성장 등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잘나가던 한국 경제가 갑자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정책의 결과로 위기가 왔다, 이런 얘기들은 식상하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정부 정책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그건 마이너한 거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살아나가는 경제이고, 세계가 굉장히 나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세계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의 위치, 우리가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봐야 한다. 세계 11위 경제가 정부 정책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 건지를 찾아야 한다.”
- 한국 경제 위기 극복의 활로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우리가 기적을 일으켰던 가장 중요한 게 DNA였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는 열쇠도 DNA다.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이 안에 있다. 앞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발전해 나가고 살아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한민족의 DNA는 위기와 기회를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특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 한민족의 특질이 위기 극복에 어떤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나?
“우리가 위기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느냐가 이 책의 결론이다. 2차 산업혁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제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의 주요 생산기지를 선으로 이어보면 한반도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세계적인 물류·생산기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여태껏 해보지 않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생산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 국제적 협력과 이익의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 새로운 생산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반도는 세계 거대 제조업체의 중심에 있다. 쉽게 말해 생산기지와 물류기지로 가장 적합한 곳이다. 많은 분석학자들 얘기다. 세계적인 생산국가인 중국, 일본, 한국, 미국을 둔 세계 500대 제조업체의 중앙이 한반도다. 또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고, 목포에서 신의주와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대(大)물류의 장이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다. 현재 1년에 4개월 정도만 열리는 북극 항로도 2030년에는 1년 내내 열리게 된다. 북극 항로를 통하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가는 데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40% 비용이 절감된다. 한반도가 세계적인 물류중심지가 될 수 있다.”
- 국제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국제 협력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의 땅이 한반도라고 본다. 중국은 훈춘에서 태평양까지 북한, 러시아로 인해 16km가 막혀 있다. 중국은 생산기지가 되고 싶어 한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땅을 같이 내면 된다. 러시아는 경제 돌파구로 극동에 명운을 걸었다. 북한도 연결만 되면 경제 개발이 가능하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신도시를 지은 유일한 나라이고 세계적인 개발 경험이 있다. 미국 역시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인 협력 속에서 새로운 생산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국제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최적지가 한반도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민족의 DNA를 통해서 위기를 돌파해 보자는 거다.”
◆ 국가부도의 날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봤나? 당시 재경부 외화자금과장이었다. 영화 내용과는 달리 환율을 높여야 한다(원화 절하)고 주장했고, 한은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영화는 허구이기 때문에 안 봤다. 1997년 1월 21일 외화자금과장으로 발령 났고 당시 그 전모를 나 이상 아는 사람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고) 당시 내가 환율을 원샷에 절하하고 그다음에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반대 입장을 전했다. 원샷으로 환율 절하를 해버리면 부채가 늘고 물가 상승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당시 한국은행에서 반대한 것으로 안다. 더 이상은 얘기 안 하겠다.”
김 전 위원장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비교적 구체적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노통 취임 2주 만에 국장(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대통령 사저에서 경제부총리, 경제수석, 금감위원장 등이 모여서 회의를 했지. 당시 마이너스 성장, SK글로벌 사태, 카드 사태 터지고 차입이 다 끊어지는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금감위원장이 취임한 지 1주일 정도밖에 안 돼 내가 자료를 만들고 난 밖 소파에서 대기하는 중이었지. 근데 누가 나오는데 노통이더라고. 노통이 “누구십니까?”라고 물어. 그래서 “전 누굽니다. 자료 때문에 있습니다” 했더니 “들어오소. 밥 먹읍시다”라고 하더군. 그때 처음으로 노통을 만났고 차관보, 차관 거치면서 평생 일을 가장 많이 해본 대통령이 됐지.”
김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붙은 공무원이 저다. 노 전 대통령과 부동산 대책, 신불자 대책, 가계부채까지 토론을 많이 했다. 당시 (노통은) 공무원들한테 인기 짱이었다. 종종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