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 단지, '흡연' 막으려 철조망 동원
거주 주민 “오죽 심하면...”
경고문구·CCTV 있어도 버젓이 불붙여
관련법 없어 길거리 전체 단속은 불가능
'흡연권 vs 혐연권' 대결 “사회합의 필요해”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금연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에도 보행 및 길거리 흡연이 여전해 주민들의 고통이 늘고 있다. 시민의식 부재와 함께 합법적인 흡연장소 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모 지역 직장인들이 금연구역 문구가 있음에도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박진범 기자] |
비흡연자인 김모(29)씨는 요즘 회사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코와 입을 막는다고 토로한다. 김씨의 건물 앞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마다 다른 회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운다. 금연문구와 폐쇄회로(CC)TV가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끔 행인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도 태연하게 흡연을 일삼는다. 김씨는 “건물에 흡연실이 따로 없어서 1층이 담배아지트나 다름없다”며 “냄새가 옷과 머리에 배고 간접흡연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39)씨는 담배꽁초가 스트레스다. 아무리 치워도 몇 시간만 지나면 가게 앞이 온통 담배꽁초 투성이다. 손님뿐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들도 꼭 가게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여 길바닥이 삽시간에 쓰레기장이 된다.
박씨는 “손님들한테만은 차마 뭐라 할 수 없어서 틈틈이 치우고만 있다”고 했다. 실제 박씨의 가게 앞은 담배꽁초와 담뱃갑, 흡연자가 뱉은 침 등으로 엉망이었다.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는 아예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농가에서 멧돼지나 다른 야생동물을 막는 데 쓰는 원형철조망을 단지 앞 벤치, 공터에 설치한 것이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모(40)씨 “처음에는 구청에서 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담배랑 음주 때문에 작년 여름부터 관리실에서 세운 것이다”며 “얼마나 심각했으면 저렇게 해놨을까”라고 씁쓸해했다.
서울 도심 모 아파트 단지에서 실외흡연을 막기 위해 원형철조망을 설치해놨다. [사진=박진범 기자] |
이처럼 길거리 흡연으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서울시가 2015년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0%가 간접흡연 피해를 경험했는데, 실외 공공장소 중 간접흡연이 가장 빈번한 곳이 길거리였다. 응답자의 약 63%가 ‘길거리에서 간접흡연이 가장 심하다’고 답했다. 이어 건물 입구(17.3%), 버스정류소(13.3%) 순이었다.
때문에 시민 가운데 보행 중 흡연 금지를 찬성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시가 지난 2017년 시민 제안 정책의제들을 투표에 부친 결과 길거리 흡연 금지를 찬성하는 비율이 88.2%에 달했다. 서울시민 10명 중에 9명꼴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길거리 전체 흡연을 막을 방법은 없다. 관련법이 금연구역에서만 흡연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강남구청 관계자는 “법에 의해 지정된 금연구역에서만 단속이 가능하다”며 “매일 단속해 위반 시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유아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 주변 10m 이내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원을 물게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 건물 내 흡연구역 모습. 원래 이 건물은 한 때 옥상에 흡연부스가 있었지만 현재는 주차장 구석으로 밀려나있다. 2019.01.14 [사진=박진범 기자] |
정작 흡연자들은 서울시내 합법적인 흡연구역이 많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유모씨는 “주차공간도 없는데 딱지만 떼는 꼴”이라며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이 문제지만 필 공간은 마련해주고 단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2)씨는 “세금도 많이 내는데 당당히 필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달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로 시내 금연구역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인데 비해 흡연구역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연구원 도시정보센터에 따르면 2017년 시내 금연구역은 26만5113개로 5년 전인 2012년보다 약 3배 증가했다. 2015년부터는 모든 음식점과 카페에서 흡연이 금지됐다. 당구장, PC방, 아파트단지 등 흡연 장소로 애용됐던 곳들도 전부 금연구역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반해 시내 흡연시설은 43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5개 자치구 중 11개 구에만 존재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는 '균형잡힌' 정책을 주문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간접흡연으로 인해 비흡연자가 건강권을 침해 받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흡연자를 모두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흡연공간을 더 많이 제공해주고 이후 불법흡연을 단속 한다”며 “우리나라도 대결과 갈등구도를 지양하고, 양측이 원만하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 방조되는 골목길 흡연 실태를 개선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동작구 한 거리 바닥이 흡연자가 버리고 간 쓰레기로 엉망이다. [사진=박진범] |
be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