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숨을 못 쉬겠다.”
사우디아라비아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살해되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이다.
CNN은 9일(현지시각) 카슈끄지 살해 정황이 녹음된 오디오 파일 녹취록을 확인한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가 실수가 아닌 계획적으로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진=로이터 뉴스핌] |
소식통이 확인한 녹취록엔 당시 정황이 상세히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은 카슈끄지가 지난 10월 2일 오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카슈끄지는 이날 약혼자와의 결혼 서류를 떼기 위해 영사관에 들렀다. 그러나 가해자 중 한 명의 얼굴을 알아보면서 일이 심상치 않음을 카슈끄지가 직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카슈끄지가 알아본 남성은 마헤르 압둘아지즈 무트레브로 확인됐다. 무트레브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수행하던 외교·정보관으로, 영국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 근무 시절 카슈끄지와 알고 지낸 사이다.
무트레브로 추정되는 남성은 카슈끄지에게 “넌 돌아올 것이다”이라고 말했고, 카슈끄지는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카슈끄지가 가리킨 이들은 약혼자를 비롯한 동료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CNN은 당시 카슈끄지 약혼자가 영사관 방문에 동행했으며, 카슈끄지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동료들에게 전화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소음이 잇따랐고, 카슈끄지가 몸싸움을 하는 듯한 정황이 기록됐다.
사우디 당국은 앞서 카슈끄지 살해 사건을 해명하던 중 그가 사고로 질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녹취록에서 카슈끄지는 주변 소음이 묻힐만큼 큰 목소리로 여러 차례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 간청에도 불구하고 카슈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숨을 못 쉬겠다”였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어지는 주변 소음은 대사없는 영화 장면처럼 대부분 몇 가지 단어로 묘사됐다. 몇 차례 “비명(Scream)”이란 단어가 언급됐고, “헐떡임(Gasping)”, “톱(Saw)”, “절단(Cutting)”이란 단어가 이어졌다.
카슈끄지가 숨을 거두는 순간은 기록되지 않았다.
문서에는 사우디 내무부 소속이었던 감식 전문가 살라 알 타비키 목소리도 기록됐다. 알 타비키는 카슈끄지 시신을 절단하는 동안 주변인들에게 음악을 들으라고 권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는 “이어폰을 끼거나 나처럼 음악을 들어라”고 충고했다. 알 타비키는 카슈끄지와 무트레브 외 녹취록에서 이름이 확인된 유일만 인물이다.
무트레브가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듯한 목소리도 녹음됐다. 소식통은 무트레브가 어딘가에 세 차례 전화를 걸었으며, 상황을 보고하는 듯 “일이 끝났다고 당신네 사람(yours)에게 전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CNN은 ‘당신네 사람’이란 단어가 상관이나 상사를 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터키 당국은 가해자들이 사우디 왕실 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녹취록 문서는 터키와 유럽 일부 국가를 포함한 사우디 동맹국 간 공유됐으나, 녹음 파일 원본은 미국과 사우디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NN은 공개된 오디오 파일 번역본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더욱 압박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사우디 왕실을 가리키는 증거가 보다 구체적으로 나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제 전략적 파트너인 사우디를 지지하거나 끊어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였다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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