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8명 "올해 연차 다 사용 못했다"
연말 쌓인 업무·사내분위기·상사 눈치에 미사용
전문가 "직장인 권리보다 실적 우선하는 기업풍토 바꿔야"
[서울=뉴스핌] 노해철 기자 = # 직장인 정모(31)씨는 올해 주어진 연차 15일 중에서 3일밖에 쓰지 못했다. 남은 연차는 무려 12일. 연말에 접어들었지만 정씨는 쌓여있는 업무 탓에 연차 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여기에 상사의 눈치도 한 몫 단단히 한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연차를 제대로 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숨 쉬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남은 연차를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씨는 “연차 하루를 쓰려고 해도 눈치를 봐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동료 직원 대부분이 연차를 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사진=케티이미지뱅크] |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이 같은 고충을 겪는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19일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올해 연차 소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79.1%가 ‘올해 연차를 다 쓰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11월 초 기준으로 7일 정도의 연차가 남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차를 사용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32.4%)’를 꼽았다. 이어 △업무가 너무 많아서(31.2%) △연차를 쓸 만한 일이 없어서(31.2%) △상사의 눈치가 보여서(29.1%)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 일부 직장인은 휴가를 위해 없는 병도 만들고 있다. 눈치를 덜 보기 위해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부천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유모(29)씨는 “수술받았던 어깨가 안 좋다는 핑계로 연차를 쓴 적이 있다”며 “정당한 내 권리도 거짓말을 해야 찾을 수 있다”며 씁쓸해했다.
정부는 2003년 연차 사용을 독려하는 ‘연차사용촉진제도’를 도입했다. 제도는 연차 만료 6개월 전 회사가 직원들에게 연차 사용을 촉구하도록 한 것이다. 회사가 연차휴가를 부여했음에도 근로자가 사용하지 않았다면 회사의 금전보상의무는 면제된다.
문제는 직장인들이 연차수당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사용하지 못한 연차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들이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인 권리보다 회사 실적을 우선하는 기업풍토를 바꿔야 한다”며 “직장 내 종업원의 정당한 권리를 대변하는 기구가 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많은 업무량을 제쳐두고 휴가를 간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만큼 인력 부족과 같은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sun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