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뿐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일반인과 경쟁해야
보건복지부 "재정 문제 탓에 기준확대 고심"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피아노 전공을 꿈꾸는 고등학교 3학년 A(18)군은 청력이 나빠 4년 전부터 보청기를 끼고 다닌다. A군은 보청기가 없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말소리조차 희미하게 들린다. 귀머거리라는 친구들의 놀림은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A군은 장애인이 아니다. 청력의 손상 정도가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는 기준에 미치지 못 해서다. 결국 A군은 피아노 입시에서 일반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만 한다. A군은 "어느 대학교는 전자기기인 보청기를 착용하고는 실기시험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심각한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당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청각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도 장애등급 기준에 미치지 못해 불편을 겪는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장애인과 다를 바 없음에도, 행정서류 상 일반인이라 복지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학업과 취업에서는 장애인이 아닌 일반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차등적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장애등급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적어도 한 귀의 청력을 80데시벨(dB), 다른 귀의 청력을 40dB 이상 잃은 사람이어야 청각장애 등급 중 가장 낮은 6급을 받을 수 있다. 한국청각장애인협회 한 관계자는 "한 쪽 청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기준에 맞지 않아 장애인 대우를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학업뿐 아니라 직장 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른쪽 귀에 난청 증상이 있었지만, 한 쪽 귀가 정상이라 장애등급을 받지 못했다는 B씨는 수차례 직장을 옮겼지만, 번번이 적응에 실패했다.
B씨는 난청이 있는 오른쪽 귀 방향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을 때 잘 듣지 못 했다. 때문에 "왜 들어놓고 대답을 하지 않느냐"는 상사의 꾸지람은 부지기수였고, 동료들에게는 "대답하기 싫어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B씨는 "장애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커피숍에서 근무하는 청각장애인 조민아 바리스타(오른쪽) [사진=스타벅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우리는 단체가 생긴 1998년 이후로 장애등급 기준 개선을 보건복지부에 지속해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단 청력뿐만이 아니라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 중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재정 문제 때문에 기준 완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만약 기준을 완화해 장애인들이 늘어나게 되면, 그만큼 정부가 부담해야 할 수당이나 혜택도 늘어나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물론 장애등급제는 내년 7월에 폐지될 예정이지만, 1~6등급이라는 등급 기준만 사라질 뿐 장애 정도에 따라 장애인을 구분하는 방식은 유지되기 때문에 사각지대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우선 국가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확한 자료를 기반으로 공론화를 거쳐 복지의 폭을 넓힐지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